숲노래 책숲마실


봄볕을 먹지 않는 (2022.5.24.)

― 인천 〈딴뚬꽌뚬〉



  바다가 살아나려면 숲을 살리면 됩니다. 숲을 살리려면 바다를 살리면 돼요. 들숲바다는 늘 하나예요. 이 들숲바다를 살리려면 들숲을 가로지르는 부릉길(찻길)하고 바닷가에 두른 부릉길을 없앨 노릇입니다. 나무가 마음껏 자랄 빈터를 두어야 하고, 풀죽임물을 이제는 치워야 하며, 아이어른 누구나 홀가분히 거닐거나 자전거를 탈 수 있는 마을길로 돌아서야 합니다.


  들숲바다가 싱그러운 곳에서 누구나 즐겁고 아름다이 살아갈 만합니다. 들숲바다가 없거나 죽어가는 곳이라면 누구나 매캐하고 메마른 나날이게 마련입니다. 서울로 뻗는 모든 길은 아침저녁으로 죽음길 같아요. 사람이 사람 아닌 납작오징어인 판입니다. 아무리 부릉길을 늘려 본들 이 죽음길을 걷어낼 수 없어요.


  들숲바다가 싱그러운 곳에서는 풀벌레도 지렁이도 새도 짐승도 사람도 매한가지인 숨결입니다. 높거나 낮지 않아요. 사람만 내세우는 나라에서는 부릉길이 끔찍하고 하늘수레(케이블카)가 자꾸 뻗으며 번쩍대(송전탑)를 마구 세워요. 그런데 풀벌레랑 벌나비가 없이 꽃가루받이를 할 수 있나요? 새가 없이 벌레잡이를 할 수 있나요? 지렁이·쥐며느리·개미가 없이 흙이 살아나도록 할 수 있나요?


  여름을 앞둔 늦봄이 제법 덥다고 할 만하지만, 전철길은 매우 춥다고 할 만합니다. 버스·전철뿐 아니라 서울·큰고장은 겨울이 덥고 여름이 추워요. 사람들은 길에서 어울리거나 만나거나 일하거나 지내지 않고, 모두 후끈하거나 서늘한 바람으로 감싼 곳에서 낮에도 불빛을 밝히면서 일하거나 지내거나 놉니다. 여름에 땀을 흘리지 않으면 언제 흘릴까요? 겨울에 손가락이며 귀코입이 얼지 않으면 언제 얼까요? 인천 〈딴뚬꽌뚬〉을 찾아가는 길에 두동진 민낯을 느낍니다. 봄에 봄볕을 머금기에 봄꽃이 싱그럽고, 이 봄볕을 맨몸으로 맞이하기에 열매가 익을 수 있어요. 그런데 사람들은 어디에 있을까요? 사람만 봄빛을 거스르는 듯합니다.


  그림을 그리고 싶다면, 마음이 가는 대로 그리면 넉넉합니다. 이 마음이 가는 길이란, 늘 스스로 사랑하는 마음 하나이지 싶어요. 숱한 어른들은 “아이들(어린이·푸름이)이 손전화·보임틀(TV)에 빠져서 산다”고 말합니다만, 너무도 틀린 말이라고 느껴요. 곰곰이 보면 볼수록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손전화·보임틀(TV)을 던져 주고서 내팽개쳤다”고 해야 옳지 않을까요?


  젊은이·어린이·푸름이가 책을 안 읽는다고 탓하지 말아요. ‘어른이 아닌’ 나이든 사람들부터 책을 멀리하고 손전화·보임틀에 사로잡힌걸요. 우리가 어른이라면 봄볕을 누리면서 마음을 살찌우는 아름책을 곁에 둘 노릇입니다.


ㅅㄴㄹ


《성우덕이 목소리를 듣는 방법》(윤영선, 딴뚬꽌뚬, 2020.3.10.)

《집들이, 인천 응봉산의 온도》(유광식, 으름, 2021.9.29.)

《있잖아, 다음에는 책방에서 만나자》(김지선, 새벽감성, 2021.2.21.)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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