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린 해부학자입니다 - 기린 덕후 소녀가 기린 박사가 되기까지의 치열하고도 행복한 여정
군지 메구 지음, 이재화 옮김, 최형선 감수 / 더숲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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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숲책/숲노래 책읽기 2022.10.29.

숲책 읽기 169


《나는 기린 해부학자입니다》

 군지 메구

 이재화 옮김

 더숲

 2020.11.18.



  《나는 기린 해부학자입니다》(군지 메구/이재화 옮김, 더숲, 2020)는 배움길을 새롭게 여는 삶을 조곤조곤 밝힙니다. 글님은 여러 앞길을 그리다가 긴목이(기린) 몸얼개를 살피는 갈래를 파고들었다지요.


  사람이 아닌 목숨은 푸른별에서 삶터를 아주 빼앗기거나 밀리는 판입니다. 터보기(환경영향평가)를 한다고 시늉이지만, 풀꽃나무나 풀벌레한테 미리 물어보는 일이란 없습니다. 사람만 살려고 하면 사람도 죽을 텐데, 둘레에 누가 있으며 어떻게 하루를 누리는가 하고 만나려는 마음이 자꾸 잊혀요.


  별은 날마다 돋습니다. 그러나 사람들 스스로 ‘한 사람 한 사람’이 아닌 ‘사람물결’에 휩쓸리는 서울로 쏠리면서 별빛을 잊어요. 별빛을 잊는 마음이기에 사랑이 사라져요. 별빛을 잊는데 사랑이 왜 사라지느냐고요? 사랑은 별빛이요 햇빛이요 꽃빛이요 풀빛이요 바람빛이거든요. “네가 좋아”는 사랑이 아닌 ‘좋음’입니다. 좋음은 한 가지만 보면서 마음이 끌리는 길이요, 더 좋거나 덜 좋다고 느끼면서 크기를 가르고, 안 좋다 싶으면 내칩니다.


  더 좋은 꽃이나 덜 좋은 꽃은 없어요. 더 나은 풀이나 더 나쁜 풀은 없어요. 별도 해도 꽃도 풀도 바람도 그저 그대로 흐르는 사랑이라는 숨결입니다. 우리는 사랑이라는 숨결을 잊으면서 그만 ‘무리짓기’로 쏠리고, 무리를 지으면서 둘레 숨결을 잊다가, 시나브로 사랑을 잃는 수렁에 잠깁니다.


  목긴이를 살피는 아가씨는 ‘남들이 가지 않는 길’에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한다고 여길 만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남들이 가는 길을 굳이 갈 까닭이 없습니다. 남들이 하는 일을 애써 할 까닭도 없어요. ‘남들처럼’이 아닌 ‘나처럼’을 바라볼 수 있을 적에 둘레를 꾸밈없이 헤아리면서 어깨동무를 합니다. ‘나처럼’을 잊고서 ‘남들처럼’ 나아가면서 좋거나 나쁘다고 가를 적에는, 그만 속빛이 아닌 껍데기에 얽매이면서 이웃하고 등집니다.


  스스로 사람빛이라면, 사람하고 숲이 같은 줄 느껴요. 스스로 잊은 사람몸이라면, 숲하고 사람을 동떨어진 남으로 여깁니다. 밤에는 별바라기를 하기를 바라요. 밤에는 일찍 불을 끄고서 몸을 쉬기를 바라요. 밤에 별빛을 헤아리지 않으면, 낮에 햇빛을 맞아들이지 못 합니다.


ㅅㄴㄹ


탐스런 털로 덮인 가죽 아래 칙칙한 적색 근육이 보였다. 몇 개의 근육 다발이 층층이 포개져 있는 것이 보였다. ‘도대체 어떤 이름의 근육일까. 어떤 역할을 할까.’ (51쪽)


니나의 해부는 대실패로 끝났지만, 지식은 확실히 내 안에 축적되어 있었다. 그 느낌이 정말 기뻤다. (79쪽)


근육이나 뼈의 이름은 이해하려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눈앞에 있는 것을 이해한 뒤, 누군가에게 설명할 때 사용하는 도구다. 그리고 해부의 목적은 이름을 특정하는 것이 아니라 생물의 몸 구조를 이해하는 데 있다. (83쪽)


기린의 제1흉추는 흉추지만, 기능적인 면으로 봤을 때는 ‘8번째 목뼈’인 것이다. 남은 일은 이 내용을 논문으로 만들어 세상에 발표하는 것뿐이다. (192쪽)


같은 취약종인 아프리카코끼리의 야생 개체 수가 45만 마리, 하마가 12만 5천 마리인 데 비해 너무나 적은 기린 개체 수를 보면 암담한 마음이 든다. (214쪽)


나는 어머니의 모습을 통해 지식을 몸에 익히는 즐거움과 위대함을 배워 왔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억지로 지식을 쑤셔넣는 ‘공부’와 스스로 기꺼이 주체적으로 지식을 얻는 ‘학문’의 차이를 깨달았습니다. (221∼222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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