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마음노래
잿빛
몸을 녹이면 ‘새로 태어날 곳’으로 간단다. 누구는 몸을 녹여 흙으로 돌아가서 씨앗한테 넋이 깃들어 새롭게 풀꽃나무로 솟아나지. 누구는 몸을 녹여 흙으로 잠들어서 넋이 훨훨 날다가 새 몸뚱이한테 스며들어 새 목숨붙이로 살아나지. 누구는 몸을 녹여 고스란히 물이 되기에 샘도 내도 바다도 되다가 구름도 비도 되어 노래하지. 누구는 몸을 녹여 물빛으로 찰랑이다가 날개를 받아들이고는 온누리를 훨훨 날아오르며 눈부시게 놀지. 누구는 몸을 녹여 고요히 꿈누리로 찾아가면서 문득 깨어나 별이 되어 빛나지. 그런데 ‘몸을 녹이지 않으’려고 하면서 끝까지 ‘새로 태어날 곳’으로 안 가는 놈이 있어. 이놈은 잿가루가 되어 새로 태어날 생각을 잊은 채, 잿더미로 몸뚱이를 입히면서 마치 ‘살아가는 듯’ 꾸미더라. 잿빛은 두 가지야. 몸을 녹여 마음을 살리려는 길이 있고, 몸을 붙잡느라 마음을 잊어 그만 숨결을 잃어버리는 굴레가 있어. 너희가 뚝딱뚝딱 올려세우는 서울(도시)이 바로 ‘죽음잿빛’이야. 이 서울은 돈이 흐르고 이름이 넘치고 힘으로 겨루지. 보렴! 서울에 ‘살림’이나 ‘사랑’이나 ‘숲’이 있니? 죽은몸을 부여잡고서 넋없이 맴돌거나 떠돌거나 헤매는 ‘눈먼몸’만 흘러넘치지 않아? 이제는 시골조차 ‘서울바라기’를 하면서 살림을 버리고 사랑을 등지고 숲을 깔아뭉개더라. 너희는 별바라기·꽃바라기·비바라기·해바라기를 품으면서 ‘참나·바라기’로 가야 살아날 텐데. 2022.10.18.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