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우리말꽃/숲노래 말빛 2022.10.19.

나는 말꽃이다 107 손빛 (+ 장정일 손글씨)



  지난날에는 쪽종이에 깨알같이 손글씨를 적으면서 낱말책을 여미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쪽종이를 곧잘 쓰지만 이제 거의 안 씁니다. 다들 셈틀로 낱말책을 여미지요. 셈틀을 쓰기 때문에 낱말을 살피거나 엮는 일이 한결 수월하고, 보기글을 훨씬 많이 모을 수 있습니다. 다만 아무리 셈틀이 이바지하더라도 ‘사람이 손으로 하나하나 가다듬고 추스르고 갈무리합’니다. 그리고 셈틀로 낱말책을 여미더라도 늘 글꾸러미를 챙겨요. 자리맡에서는 셈틀을 켜지만, 걸어다니거나 돌아다니다가 문득문득 떠오르는 생각이나 낱말은 곧장 손으로 붓을 쥐어 종이에 남기거든요. 낱말책을 여미려는 사람이라면 손글을 날마다 숱하게 씁니다. 늘 자리맡에 앉아서 일하지 않거든요. 왜냐하면, 말은 삶을 그리는 소리입니다. 삶을 모르거나 등진 채 말만 붙잡는다면 낱말책이 허술해요. 살림을 안 가꾸거나 안 지으면서 말만 다룬다면 낱말책이 후줄근합니다. 손수 바람결을 느끼고, 스스로 집안일을 하고, 맨손에 맨발로 풀꽃나무를 헤아리면서 흙이며 빗물이며 햇볕이며 별빛을 쓰다듬기에, 낱말 하나에 담는 모든 숲빛과 사랑과 꿈과 마음을 알아가면서 뜻풀이하고 보기글을 돌아봅니다. 손으로 빚으면서 손길이 빛날 적에 비로소 낱말책 하나가 태어납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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