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마음노래

게으름



부지런한 사람이 있다고 여기면, 게으른 사람이 있게 마련이야. 좋은 사람을 가리거나 따지면, 나쁜 사람하고 늘 부딪히지. 네가 보기에 누가 부지런하다면, 그이는 네가 바라는 대로 다 했니? 네가 보기에 누가 게으르다면, 그이는 네가 바라는 대로 안 하거나 미루거나 못 했니? 사람도 새도 풀벌레도 헤엄이도 스스로 그리는 길에 맞추어서 하루를 살아간단다. 남이 그린 길이 아닌, 모든 숨결이 저마다 스스로 그린 길을 떠올리면서 살아가지. 저 바람을 보겠니? 바람은 어떻게 불어? 빠르니? 느리니? 아니면 바람이 자느라 없는 듯하니? 바람이 휭휭 불면 부지런할까? 바람이 느리거나 가볍거나 자는 듯하면 게으를까? 2월에 싹이 트고 꽃이 피는 푸나무는 부지런하니? 4월에도 자고 5월에도 자는 푸나무는 게으를까? 그러면 7월이나 8월이나 9월에 꽃이 피는 풀꽃은 아주 게으름뱅이일까? 걸음이 느리거나 손놀림이 더디면 게으를까? 하루에 한 줄을 쓰면 게으르니? 하루에 100줄짜리 글을 여럿 척척 쓰면 부지런한가? 사고팔려면 값을 매길 텐데, 값이 높아야 부지런하거나 좋을까? 값이 낮으면 게으르거나 나쁠까? 겨루어서 이기면 부지런할까? 겨룰 적마다 지면 게으를까? 밤 두 시에 하루를 열면 부지런할까? 낮 두 시부터 하루를 열면 게으를까? 부디 ‘부지런·게으름’이 아닌 “스스로 그리는 꿈길”만 고요히 바라보기를 빌어. 2022.8.9.불.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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