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2022.9.21.
수다꽃, 내멋대로 26 아이곁에서
2008년 8월 16일, 큰아이가 태어난 날부터 ‘육아일기’를 썼다. 아이하고 곁님을 돌보는 어버이로 지내자면 셈틀맡에 앉을 틈이 없다고 여겨, 아주 작아 뒷주머니에 넣을 만한 꾸러미(수첩)를 잔뜩 장만했고, 언제 어디에서나 쪽틈을 내어 쪽글을 적어 놓고서, 비로소 셈틀맡에 앉아 글을 여밀 짬이 나면 바지런히 옮겼다. 다들 ‘육아·일기’라는 낱말을 쓰기에, 제아무리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는 일을 하는 사람이더라도 유난을 떨고 싶지 않았다. 순이로 태어난 큰아이는 온날(백일)을 맞이하기까지 날마다 기저귀 쉰두 벌, 돌이로 태어난 작은아이는 온날을 맞이하기까지 날마다 기저귀 서른 벌을 내놓았다. 온날을 고비로 똥오줌기저귀 빨래는 차츰 줄어 큰아이는 쉰·마흔다섯·마흔·서른으로 꾸준히 줄다가 마침내 스물을 지나 열둘을 거쳐 대여섯하고 서넛 사이를 한참 오가다가 기저귀는 더 안 빨아도 되었다. 집안일이 ‘기저귀 빨래’만 있지 않으니 다른 일은 그대로인데, ‘아기 기저귀’를 그만 빨아도 될 무렵 ‘곁님 핏기저귀’ 빨랫감이 나왔고, 곧이어 작은아이 똥오줌기저귀로 이었다. 아이들은 늘 어버이 곁에서 쪼물락쪼물락하며 무엇이든 따라하고 싶다. 글을 쓰면 같이 글을 쓰려 하고, 그림을 그리면 같이 그림을 그리려 한다. 책을 읽으면 같이 책을 읽으려 하고, 노래를 부르면 같이 노래를 부르려 하고, 춤을 추면 같이 춤을 추려 한다. 부채질을 해주면 되레 부채질을 해주겠다고 부채를 뺏는다. 걸으면 같이 걸으려 하고, 자전거를 타면 같이 자전거를 타려 한다. 호미를 쥐어 흙을 쪼면 같이 호미를 쥐어 땅을 쪼아야 하고, 톱을 쥐어 나무를 켜면 으레 톱을 쥐어 같이 나무를 켜야 한다. 우리 집 아이들은 아주 어릴 적부터 어버이 곁에서 붓도 쥐고 종이도 만지고 찰칵이(사진기)까지 다루었을 뿐 아니라, 부엌칼에 호미에 낫에 톱도 덩달아 다루었다. 내가 손수 집짓기를 한다면 아이들은 아마 집짓기를 함께하면서 배우겠지. 다시 말해서, 어버이는 아이들한테 온삶을 보여주고 물려준다. 아이들은 어버이한테서 모든 살림을 소꿉놀이로 따라하면서 새롭게 가꾸고 지어낸다. 어버이는 아무 짓이나 못 한다. 늘 아이가 지켜보고 쳐다보고 바라보니까. 아이가 늘 보기에 어버이는 ‘아이 곁에서 무엇을 해야 스스로 아름답고 즐거우며 사랑스러울까?’를 늘 생각하면서 찾아나서고 배우게 마련이다. ‘아이가 늘 어버이한테 스승’이다. ‘따라하려는 아이가 곁에 있기에 어버이는 어질고 참하며 착하게 살림하는 길을 늘 새롭게 배우면서 펼치되, 춤노래로 즐겁게 맞아들일 노릇’인 줄 알아차렸다. 이렇게 하나하나 알아차리는 동안 ‘육아’나 ‘육아일기’란 한자말은 안 어울린다고 깨달았다. 한자말이라서가 아니라 ‘아이키우기·아이기르기’는 터무니없다. 아이는 스스로 보고 느끼고 놀면서 스스로 배우고 자란다. 어버이란 자리는 “아이 돌아보기(돌보기)”는 할 수 있다. 그런데 아이만 돌아보아서는(돌보아서는) 어른답지 못 하다. 우리가 어버이(또는 어른)라면, “아이 곁에서 사랑을 스스로 숲빛으로 지으며 살림을 노래할 줄 알아야”겠더라. 이 대목까지 아이한테서 배웠기에 이제는 ‘아이곁에서’란 말을 지어서 쓴다. 아이 곁에서 살며서 글을 쓰면 ‘아이곁글’이다. 누구라도 매한가지라고 여긴다. 우리한테는 ‘아이키우기·아이기르기(육아·훈육·양육·보육·교육)’가 어울리지 않는다. 우리한테는 ‘아이곁에서’가 어울리고, 이 살림을 글로 옮긴다면 ‘아이곁글’을 남길 뿐이라고 생각한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