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139 제2의 아무개



  어느 그림책을 처음 본 날 참으로 거북해서 한켠에 밀어놓았고, 여섯 달 만에 다시 들추어 찬찬히 읽었습니다. 이 그림책은 책날개에 “제2의 존 버닝힘, 제2의 퀸틴 블레이크, 영국 그림책 전통을 잇는 작가(그림책연구가 김난령)”라는 말을 새겼어요. 다시 읽어 보아도 쓴웃음이 납니다. 그림책을 싫어하니까 “제2의 아무개”라는 말을 쓰겠지요. 그림책뿐 아니라 글책도 빛꽃책(사진책)도 매한가지입니다. “제2의 아무개”라는 이름을 붙인다면 ‘흉내·시늉·따라하기·베끼기’에 갇혔다는 뜻입니다. 스스로 서지 못한 모습에 “제2의 아무개”란 이름을 붙여요. 생각할 노릇입니다. 똑같은 책이란 없고, 비슷한 책도 없어요. 다 다른 나라에서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른 이웃을 곁에 두고서 다 다른 어른이자 사람으로서 다 다른 사랑으로 다 다른 삶을 고스란히 실어서 다 다른 이야기로 여미어 내는 다 다른 책입니다. 우리는 서로 어깨동무할 마음이 있는가요? 우리는 서로 손잡고 뛰놀며 웃고 노래할 생각이 있는지요? 힘을 빼야 놉니다. 힘이 들어가면 못 놀아요. 힘을 잔뜩 주면 일도 어그러집니다. 살림·집안일도 힘이 아닌 마음으로 합니다. 아직 스스로 마음을 못 세워 “제2의 아무개”로 맴돌 테지요. 마음을 세우면 ‘나’입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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