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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생활들 - 내 나라를 떠나 사는 것의 새로움과 외로움에 대하여 ㅣ 들시리즈 5
이보현 지음 / 꿈꾸는인생 / 2022년 7월
평점 :
숲노래 책읽기 2022.9.18.
책집지기를 읽다
16 김포 〈책방 노랑〉과 《해외생활들》
책은 따스히 손길을 받을 적에 새롭게 두근거리며 피어오르는 작은나무이지 싶어요. 아직 따스히 손길을 받지 못 한 책은 얌전히 기다리면서 꿈을 그립니다. “누가 나를 바라볼까? 누가 나를 알아볼까? 누가 나한테 다가올까? 누가 나한테 손길을 내밀까?”
다 다른 사람이 다 다른 마음으로 나무를 베어, 다 다른 사람이 다 다른 마음으로 살아낸 하루를, 다 다른 사람이 다 다른 마음으로 옮긴 글·그림·빛꽃(사진)을 얹어서 태어나는 책입니다. 떡갈나무라는 이름이더라도 숲에서 모든 떡갈나무는 다릅니다. 쑥이라는 이름이더라도 들에서 모든 쑥은 달라요. 넌지시 바라보다가 가만히 알아보려고 할 적에 비로소 다 다른 줄 느끼고, 다 다른 풀꽃나무 기운이 스민 책에서 어떤 이야기가 흐르는가를 읽어낼 만합니다.
제가 어릴 적에 김포는 들(평야)이 드넓은 곳입니다. 이제 김포는 들빛으로 반짝이는 시골이 아닌, 높다랗게 솟은 잿빛집(아파트)이 빼곡한 고장입니다. 사람들은 들을 밀어 잿빛집을 올린 곳이 어떻게 망가지는지 생각하지 않는 듯합니다. 집앓이(주거난)를 풀려면 얼른 잿빛으로 뚝딱뚝딱 올리고, 새까맣게 부릉길을 닦아서 매캐한 김이 뒤덮도록 해야 한다고 여겨요.
푸른별은 동그란 터전입니다. 모두 하나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내놓은 쓰레기는 바람이나 물결을 타고 이웃나라로 가요. 이웃나라에서 내놓은 잿더미는 물결이나 바람을 따라 우리나라로 오고요.
총칼을 만들면 푸른별 모든 나라가 시달립니다. 사랑으로 짝을 맺어 기쁘게 아이를 낳는 수수한 사람이 하나둘 깨어나면 푸른별이 빛납니다. 오늘 우리는 어떤 길일까요?
김포에 마을책집이 여럿 있습니다. 이 가운데 〈책방 노랑〉은 이웃나라에서 삶길을 헤아리면서 천천히 걸어온 길을 노랗게 물들이는 책밭으로 가꿉니다. 《해외생활들》은 푸른별살이를 아우르는 하루를 들려줍니다. 굳이 ‘우리나라’란 울타리에서 살아야 하지 않습니다. ‘나라’가 아닌 ‘보금자리’를 생각하면서 살림을 그릴 적에 모든 울타리를 걷어낼 만하다고 봅니다.
울타리를 쌓기에 이쪽하고 저쪽을 갈라서 싸웁니다. 사람들은 총칼로만 싸우지 않아요. 주먹힘으로도, 돈으로도, 이름값으로도 싸웁니다. 입으로는 누구나 다르다고 읊으나, 막상 “이쪽만 옳다. 저쪽은 그르다.” 하고 갈라치기를 합니다. 숲에서 이 나무만 옳고 저 나무는 그를 수 없습니다. 들에서 이 풀꽃만 곱고 저 풀꽃은 미울 수 없습니다.
다만, 돈·힘·이름을 거머쥐려는 속내를 감춘 책이 있다면, 이런 허울책은 좀 걷어내야겠지요. 어설피 잔재주를 부리며 돈·힘·이름을 얻으려는 책을 느꼈으면, 이런 거짓책은 살며시 털어낼 노릇이고요.
숲에서 깨어난 책이라면 다 아름답습니다. 숲을 잊은 책이라면 다 시커멓습니다. 숲을 노래하는 책이라면 다 즐겁습니다. 숲을 밟는 책이라면 다 사납습니다.
어느 풀꽃나무도 ‘민주·자유·평화·평등’을 안 말합니다. 그저 푸르게 일렁입니다. 사람이 짓는 글·그림·빛꽃은 무엇을 그리나요, 또는 무슨 목소리를 높이나요?
책다운 책이란, 숲다운 숲빛을 품습니다. 사람다운 사람이란, 숲으로 수수하게 어깨동무하는 살림을 사랑으로 그려서 짓습니다. 어느 나라 어느 마을 어느 터전에서든, 두 다리로 걷고 두 손으로 쓰다듬으며 두 눈으로 마주하면서 온마음으로 사랑할 수 있을 적에 비로소 삶·살림을 슬기로이 돌보는 사람으로 서리라 생각합니다.
《해외생활들》(이보현 글, 꿈꾸는인생, 2022.7.8.)
인종차별이 분명 존재하는 곳이었지만, 단 몇에 의한 차별일 뿐이었다. 언제나 독일인과 동등한 기준에서 평가되었고, 기화가 주어졌다. (40쪽)
내 발음을 처음 들어도 한 번에 알아듣는 이가 있다. 처음에는 나의 독일어를 탓한 적도 있었지만, 인사조차 알아듣지 못하는 이들을 만나며 단지 언어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해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사람들이 있다. (43쪽)
그제서야 주위를 둘러보니, 나처럼 우산을 쓰고 이동하는 사람이 없었다. 비가 가볍게 자주 내리는 독일에서는 사람들이 우산을 필수로 들고 다니기보다 비가 오면 그냥 맞는다. (97쪽)
동기가 알려준 노란 책은 2유로(한화로 2600원), 비싸면 5유로(6500)에 구입할 수 있었다. 보통 15∼20유로(16200∼26000원)인 책을 바구니에 담을 때와 달리 내 손도 신이 났다. (126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