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2.8.17.


《기형도 산문집》

 기형도 글, 살림, 1990.3.1.



어제는 세차게 내린 비. 오늘은 가볍게 내리는 비. 빨래를 하고 밥을 하고 저잣마실. 오늘도 저녁 아홉 시를 넘을 즈음부터 풀죽임물(농약)을 우렁차게 뿜어대는 소리. 열 몇 해 앞서는 할배들이 등에 풀죽임물통을 짊어지고서 쏴쏴 소리를 내며 뿌렸고, 그 뒤로 ‘무인 헬리콥터’를 쓰다가, ‘드론’을 쓰다가, 이제는 커다란 짐차에 무시무시한 바람개비를 태우고서 사납게 쏘아댄다. 시골 밤빛도 밤노래도 모두 짓밟는 풀죽임물은 누가 돈을 댈까? 농림부일까? 시골 군청이나 도청일까? 풀죽임물을 뿌리고, 비닐을 뒤덮고, 죽음거름(화학비료)을 퍼붓고, …… 이런 데에 해마다 돈을 얼마나 엄청나게 들이붓는 나라인가? 미쳐 돌아가는 나라를 느끼는 늦여름에 《기형도 산문집》을 새로 읽는다. 한창 푸름배움터를 다니던 열다섯 살에 처음 읽었으니, 서른 몇 해 만에 되읽는구나. 예전엔 몰랐는데, 글님은 나라 곳곳을 떠돌며 그곳 이웃 글꾼한테서 술을 얻어마시고 잠을 얻어자면서 수다를 떨었구나. 그런데 기형도 이분처럼 ‘굳이 서울을 떠나 여러 고장 여러 글꾼을 만나러 다닌’ 사람은 드물 테지. 시골에서 조용히 살면 ‘멀리 못 본다’고들 말하지만, 서울에 얌전히 있을 적이야말로 ‘숲을 잊을’ 테니 외려 좁을밖에 없으리라.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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