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2022.9.15.

숨은책 644


《放漁》

 곽학송 글

 명서원

 1976.7.15.



  1993년에 바뀐 배움수렁(입시지옥)은 또래를 둘로 갈랐습니다. “수능을 보려면 읽어야 해.”라며 받아들이는 또래가 있고 “수능 때문에 읽어야 해?”처럼 짜증내는 또래가 있어요. 저는 둘 사이에서 “수능이고 뭐고 우리 삶을 담은 글이면 모두 새롭게 여겨 읽을 생각이야.” 하고 대꾸했습니다. 다만, 저처럼 읽겠다는 또래는 못 봤습니다. “수능을 보려면 읽겠다”고 여긴 또래조차 “야, 설마 그 책과 그 사람(작가) 글이 (시험문제에) 나올까?” 하면서 절레절레 미루며 “네가 읽고서 줄거리를 알려줘.” 하기 일쑤였습니다. ‘곽학송’이란 이름은 또래 사이에 ‘읽어야 하나 마나’ 하는 갈림길 가운데 하나였어요. 배움책(교과서)에는 안 나와도 이분 글을 읽었고, 아무튼 셈겨룸(시험문제)에도 안 나왔습니다. 《放漁》에는 ‘제주 4·3’을 다룬 〈제주도〉라는 긴글이 나옵니다. 이런 글도 있구나 여기면서 읽다가, 힘자리(권력층)에 붙어 아픈죽음을 구경꾼 눈길로 다루고, 몹쓸놈(학살자)한테 ‘너희 잘못이 아니야(면죄부)’ 하고 읊는, 썩어빠진 글장난을 느꼈습니다.


ㅅㄴㄹ


“현수! 쏴라!” 현수는 무아무중으로 방아쇠를 마구 당겼다. 달려오던 노인은 도로 발길을 돌려 달리다가 비명도 없이 불더미 속으로 거꾸러졌다. 그 연후에도 현수는 그냥 방아쇠를 당기었다. (332쪽)


“시체를 간수해 줄 만한 것들이라면 애당초 죽이질 않았겠다!” “뭣이 어드레? 한 번 더 말해 보라우야!” “저것들은 까마귀 밥으로 알맞다 그 소리야.” (336쪽)


“하하 솔딕히 말해서  그때 우리 아이덜 체네(처녀)만 보믄 독수리 병아리 덥티듯 하디 않았읍마.” (395쪽)


“자넨 이런 말하지 않았나. 사형수가 사형 집행인을 원망하는 법은 없다구. 오판일 경우라도. 내가 뭐 잘못했나? 난 집행인에 지나지 않았단 말이네. 사람이란 누구나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집행인이 되게 마련이네.” (411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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