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2022.8.31.
수다꽃, 내멋대로 23 서점순례 책꽃마실
읽을 책을 사러 다닌 지는 오래되었다. 아주 어릴 적에는 어머니나 아버지 심부름으로 달책(잡지)이며, 언니가 바라는 만화책을 사다가 날랐는데, 스스로 살림돈을 푼푼이 모은 때부터는 내가 읽을 만화책을 사려고 여러 마을 여러 책집을 드나들었다. 예전에는 어린배움터(국민학교) 곁에 ‘글붓 책집(문방구 책방)’이 꼭 여럿 있었다. 한 곳이 책시렁을 넉넉하게 두지 않기에, 만화책이건 달책이건 이곳저곳 누벼야 비로소 손에 쥘 만했다. 인천에 있는 커다란 〈대한서림〉이나 〈동인서관〉 같은 데는 만화책을 잘 안 두었다. 어린이로서 만화책을 사러 책집마실을 멀리 자주 다녀야 했다. 1992년 8월 28일 늦은낮에 인천 배다리 책골목에 있는 〈아벨서점〉에서 ‘독일말 배움책(독일어 참고서)’을 두 자락 찾아내면서 “새책집이나 책숲(도서관)에는 없어도 헌책집에는 있는 책”을 처음으로 느꼈고, “새책집은 많이 파는 책을 놓(베스트셀러 장사)”고 “책숲은 소설책 빌림터(대여점)이거나 고린내 나는 책만 묵힌”다고 느꼈다. 1992년 9월부터 이레마다 사나흘씩 인천 배다리 책골목으로 ‘책읽기’를 하러 다녔다. 어느 책집이든 발을 들이면 그 집이 닫는 때까지 눌러앉아서 책을 읽다가 두어 자락을 사들고 나왔다. 푸른배움터를 다닐 적에는 ‘책집 나들이 이야기’를 몇 꼭지 안 썼다. 이때에는 배움수렁(입시지옥)에 허덕이면서 글을 여밀 틈을 못 냈다. 1994년 봄에 ‘나우누리·하이텔’에서 박상준 님이 쓴 ‘헌책방 순례’라는 글을 읽고서 “나도 내가 다닌 책집 이야기를 이렇게 쓰면 책집을 누구나 널리 알아보면서 다닐 만하겠구나” 하고 여겼다. 이해 1994년부터 “헌책방 나들이”라는 이름을 걸고서 책집 이야기를 썼다. 때로는 “헌책방 마실·책방마실” 같은 이름을 썼다. 그런데 내가 쓰는 글에 책집 단골 어르신들은 “자네가 쓰는 글이 좋기는 한데, 글이름을 ‘나들이·마실’이라 붙이니, 고상하지 않아. ‘서점순례’라 해야 하지 않나?” 하고 핀잔하거나 타박하셨다. 새뜸(신문·방송)에서 일한다는 분들은 ‘서점투어’란 이름을 자꾸 썼다. 이러다가 어느 분이 〈헌책방 나들이〉란 이름으로 헌책집을 열었다고 하더라. 한참 힘들었다. 나는 ‘헌책방 나들이’란 이름으로 ‘책집에 나들이를 가자’는 뜻을 알렸을 뿐, 스스로 책집을 안 차렸으니까. 2004년에 《모든 책은 헌책이다》라는 책을 썼더니, 나중에 또 어느 분이 〈모든 책은 헌책이다〉란 이름으로 책집을 열더라. 이때에도 애먼 손가락질을 받았다. 나는 책집마실을 다닌 이야기를 글하고 빛꽃(사진)으로 여미어 누구나 읽고서 스스로 책집으로 찾아가는 길을 알려주었을 뿐인걸. ‘헌책방 나들이’도 ‘모든 책은 헌책이다’도 더는 쓰고 싶지 않아 ‘책방마실’이란 이름을 새롭게 지어서 썼는데, 2016년이었나 전남 광주에서 광주 마을책집을 알리는 꾸러미를 내면서 ‘책방마실’이란 이름을 슬쩍 가져다가 쓰더라. 헛웃음이 났다. 나더러 내가 지은 이름을 특허로 올리라고 귀띔하는 분이 많지만, 이름을 특허로 낼 마음은 없다. 다시 이름을 헤아려 ‘책숲마실’이란 이름을 걸었더니 전남 순천 도서관협회에서 그곳 달책(잡지) 이름으로 ‘책숲마실’을 쓰고 싶다고 물어왔다. 이름을 써도 되겠느냐 물어온 사람은 처음이라 그분더러 쓰라고 했는데, 막상 순천 도서관협회는 달책 《책숲마실》을 두 자락만 내고 더 안 내더라. 이러구러 2013년에 ‘책빛마실’이란 이름을 지어 《책빛마실,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이란 책을 내놓고, 2014년에 ‘책빛숲’이란 이름을 지어 《책빛숲, 아벨서점과 배다리 헌책방거리》란 책을 내놓은 적 있다. 2020년에는 ‘책숲마실’을 도로 내가 쓰기로 하면서 《책숲마실》이란 이름으로 책을 내놓았다. 우리네 마을책집 이야기를 꾸준히 쓰기에, 이 이야기를 새로 여미어 내놓을 적에는 《책꽃마실, 마을책집 이야기》란 이름을 쓰려고 생각한다. 이름짓기란 어려울 일이 없고, 남이 지은 이름을 노리거나 가로챌 까닭이 없다. 삶을 짓고 생각을 짓듯 이름을 지으면 누구나 스스로 빛난다. 스스로 사랑하는 마음을 이름에 얹으면 이 나라 책마을이 찬찬히 피어나면서 다같이 즐거우리라 본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