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137 겨울



  저는 한 해를 12월부터 열어 11월에 마감합니다. 달종이로 본다면 1월부터 12월까지로 나오지만, 저한테 12월은 마감달이 아닌 ‘한 해를 그리는 달’이고 11월은 ‘한 해를 추스르는 달’이에요. 언뜻 보기로, 첫발을 디디는 1월이 첫달이라 할 테지만, 첫발을 디디려면 ‘어디로 어떻게 얼마나 무엇을 하며 나아가려는가 하는 그림’부터 있을 노릇입니다. 한해그림(1년계획)이 없이는 한 걸음조차 내디딜 수 없어요. 우리 겨레도 예부터 섣달인 12월부터 한 해를 열어요. ‘매듭을 짓기에 첫발’이라고 할 만해요. 묵은절로 고마이 마무르면서 열고, 새절로 기쁘고 새롭게 나아갑니다. 꽁꽁 얼어붙는 추위가 흘러 겹겹 옷을 입고 겨우겨우 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만, 겨우내 포근히 덮는 하얀눈은 모든 숨결이 고요히 잠들고 가만히 꿈을 그리도록 북돋운다고 느껴요. 아침을 여는 새빛도 이와 같지요. 깊디깊은 밤이 흘러 새벽으로 나아가야 비로소 하루입니다. 밤이 있어 낮이 있어요. 우리말은 ‘낮밤’이 아닌 ‘밤낮’이랍니다. 슬플 적에는 눈물을 흘리고서 빗물에 고이 씻어내니 다시 웃음길로 나아갑니다. 채우고 비우기를 되풀이하는 사이, 이 자리에는 삶이라는 길을 살림이라는 손길로 사랑이라는 빛을 담습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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