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노래 2022.8.21.
나그네채에서 3 길삯
2008년에 큰아이를 낳고서 시외버스를 탈 적에 ‘아기’는 일곱 살까지 길삯을 안 내도 된다고 들었다. 표사는곳에서도 버스일꾼도 ‘아기표’를 끊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시외버스에 빈자리가 사라지면 아기를 안는 어버이는 내내 버겁다. ‘일곱 살까지 아기 표를 끊지 않아도 된다’고 하지만, 막상 ‘일곱 살 나이에 이르는 아이’들은 ‘자리를 차지하지 말고 어버이 무릎에 앉아서 가라’고 말을 바꾼다. 아기는 따로 표를 안 끊어도 된다면 ‘아기가 깃들 자리’는 표를 팔면 안 될 노릇이리라. 마땅히 아기가 깃들 자리로 치고 들어오는 사람들을 겪고 나서는 ‘버스가 텅텅 비어’도 ‘어린이표’를 끊었다. 일곱 살이 안 되면 어린이표조차 없어도 된다고, 게다가 자리가 널널한데 굳이 왜 끊느냐고 묻는 버스일꾼한테 빙그레 웃으면서 “자리가 널널할 때에만 아기 자리가 있고, 자리가 차면 아기는 무릎에 앉히라면서요? 아기를 무릎에 앉히고서 네다섯 시간을 갈 수 있습니까?” 하고 조용히 되물었다. 아무 대꾸를 못 하더라. 아기가 짐짝이 아닌 아기라면, 아기가 탈 적에도 표를 주어야 한다. 다만, 길삯(표값)은 0원으로 하고서, 아기도 떳떳이 자리를 누리도록 하나씩 떼어주어야겠지. 아기는 칭얼거릴 적에는 어버이 품을 반기지만, 여느때에는 반듯한 자리에 팔다리를 뻗으며 누워야 튼튼히 자란다. 이 나라가 참말로 아기·아이·푸름이·어버이를 헤아린다면, 표사는곳에서 ‘아기표’를 끊어 주어야 한다. 버스뿐 아니라 기차에서도 ‘아기표’를 0원으로 끊어 주어서, 아기를 돌보는 어버이가 느긋이 바깥일을 보러 움직이도록 이바지할 노릇이다. 그렇다면 왜 여태껏 이 조그마한 일이 자리를 잡지 못 할까? 우두머리(대통령)도 벼슬아치(정치꾼·공무원)도 버스나 기차나 전철로 아기를 데리고 다녀 보지 않았으니 하나도 모르겠지. 그들 스스로 모르는 일을 어찌 하겠는가? 우두머리(대통령을 비롯한 기관장·지자체장)한테는 ‘판공비’가 아닌 ‘자전거’하고 ‘책꽃종이(도서상품권)’를 내주어야 한다. ‘운전기사 딸린 부릉이’가 아닌 ‘버스표·전철표·기차표’를 주어야겠지. 벼슬아치(군수·시장·도지사·구청장·국회의원·공무원)들은 오직 ‘대중교통’으로만 돌아다녀야 이 나라가 바뀐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