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마실꽃 2022.8.7.

나그네채에서 2 머리카락



  나그네채에 머물면, 맨 먼저 모든 짐을 내려놓는다. 등에 맨 책짐, 어깨에 가로지른 글붓짐, 찰칵이(사진기)를 담은 짐인데, 글붓하고 글종이(수첩)을 담은 짐은 셋이다. 때로는 손에 책짐을 따로 쥐기도 한다. 책을 워낙 많이 장만하느라 끈으로 책을 묶어서 안거나 들고 다니기도 한다. 도무지 안거나 들고 다닐 만큼 책짐이 넘치면, 책숲마실을 누린 마을책집에 여쭈어 우리 시골집으로 부쳐 달라고 여쭌다.


  이렇게 짐을 다 풀고 나면 손낯을 오래오래 씻는다. 시골집에서는 참 자주 손낯을 씻는다. 글을 쓰면, 글을 쓰느라 손에서 배어난 손기름을 씻는다. 집살림을 하면, 집살림이란 내내 물을 만지는 일이다. 그러나 나그네가 되어 시골집을 떠나 머나먼 서울이나 큰고장(도시)을 돌아다닐 적에는 손낯을 씻을 데가 드물고, 애써 손낯을 씻을 데를 찾아도 시골집처럼 맑거나 차갑거나 살아숨쉬는 물이 아니다. 그렇더라도 “이 고맙고 아름다운 물이여!” 하고 읊으며 한참 손낯을 씻는다.


  이러고서 고무신을 빨지. 하루 내내 걸어서 돌아다녀 주느라 애쓴 발바닥하고 고무신을 오래오래 빨래하고 씻는다. 이다음에는 머리를 감으면서 서울·큰고장에서 묻은 때를 씻기고, 비로소 몸을 씻어서 땀내음을 털어낸다.


  이래저래 씻고 빨래를 하노라면 머리카락 몇 올이 빠지는데, 내 머리카락이 나그네채 씻는칸에 안 남도록 찬찬히 훑는다. 모든 나그네채에서는 치움이(청소부)가 있으나, 치움이 손길이 미처 못 닿는 데가 있게 마련이다. 적잖은 나그네는 앞선 나그네가 남긴 머리카락을 찾아내고서 “여긴 왜 이렇게 지저분해!” 하면서 나그네채를 마구마구 나무라기도 한다. 치움이를 나무라기 앞서 우리가 살뜰히 치워 놓고 나그네채를 떠나면 된다.


  그래서 나그네채를 떠돌 적마다 늘 생각하는데, 나그네채에 빗자루하고 쓰레받기가 있기를 바란다. 나그네가 스스로 바닥을 슥슥 쓸어서 애벌치움을 해놓도록 하면 얼마나 즐거울까. 나그네로서도 짐을 풀기 앞서 바닥부터 슥 쓸고 싶다. 난 맨발로 지내고 싶으니 더더욱 바닥이 깨끗하기를 바라고, 손수 바닥쓸기를 하고서 맨발로 나그네채에서 짐을 풀고서 쉬며 새아침을 맞고 싶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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