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길은 쉽다 (2022.5.1.)

― 포항 〈지금책방〉



  이른아침에 대구에서 포항으로 건너갑니다. 새벽에 쓴 노래꽃을 칙폭이로 달리며 옮겨적습니다. “애들도 아니고, ‘칙폭이’가 뭡니까?” 하고 묻는 분한테는 “아이 눈높이에 맞추어 지은 ‘칙폭이’란 이름이야말로 우리가 사랑할 말이라고 생각해요.” 하고 대꾸합니다.


  포항 칙폭나루에 내려서 버스로 갈아탑니다. 〈지금책방〉으로 찾아가려는 길인데, 길그림을 살피니 ‘현대제철’ 앞에서 다른 버스로 갈아타라고 뜹니다. 그러려니 하고 내리니 쇳가루가 훅 번집니다. 하늘은 파랗게 트였으나 온통 쇳바람입니다. 어린 나날을 보낸 인천이 떠오릅니다. 포항에 포항제철이 있으면, 인천에는 인천제철이 있는데, 인천에는 제철소 말고도 화학공장에 유리공장에 자동차공장에 식품공장에 연탄공장에 발전소에 …… 끝없습니다.


  국회의사당이 서울 구로공단이나 인천 남동공단 한복판에 있다면, 나라꼴이 좀 바뀌지 않을까요? 푸른지붕집을 숲으로 돌려주고서, 우두머리(대통령)는 전남·경남·강원·충북 깊은 멧골이나 시골을 석 달마다 돌면서 일하도록 하면, 나라살림이 꽤 달라지지 않을까요? 우두머리부터 서울을 떠나 시골에서 일할 적에 하나하나 거듭날 만합니다. 벼슬꾼(국회의원·정치꾼)은 제철소 옆에서 살아야 합니다.


  늦봄볕을 후끈후끈 누리며 〈지금책방〉에 닿습니다. 이제 우리나라는 6·7·8이 아닌 5·6·7이 여름이지 싶습니다. 땀을 씻고 손도 정갈하게 씻고서 책시렁 앞에 섭니다. 땀나는 철이나 천 한 자락을 늘 쥐면서 책을 살핍니다.


  책은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길은 쉬워요. 늘 새롭고 즐겁게 읽으면 넉넉합니다. 그림책은? 그림책도 언제나 새롭고 즐거이 마음을 추스르며 읽으면 넉넉해요. 만화책도 사진책도 글책도 매한가지입니다. 마음을 새롭게 다스리기에 모든 책을 새롭게 맞이합니다. 마음에 앙금이 맺히면 어떤 책이 눈앞에 있어도 안 보입니다. 마음에 스스로 사랑씨앗을 심기에 언제 어디에서나 삶빛을 책 한 자락으로 누리고, 마음에 미움씨앗을 심으면 누가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어도 한귀로 흘러나갑니다.


  날마다 새로 마주하는 하루입니다. 똑같은 하루는 없습니다. 모든 아침은 새롭게 여는 삶길입니다. 스스로 쳇바퀴라 여기니 쳇바퀴일 뿐, 스스로 사랑길로 노래하면 어느 곳에서 무슨 일을 하든 사랑일로 피어납니다.


  눈을 감아야 바람빛을 잘 봐요. 글님·펴냄터 이름을 지우고 읽어야 속빛을 잘 알아챕니다. 눈을 떠야 별빛을 잘 봐요. 사랑눈으로 책시렁을 돌아보면, 허울이나 껍데기가 아닌 씨톨이 반짝이는 책을 느낄 만해요. 사랑으로 배우고 나누는 책입니다.


ㅅㄴㄹ


《아빠 꿈은 뭐야?》(박희정, 꿈꾸는늘보, 2021.12.24.)

《하다 하다 책방이라니》(안현주, 롱롱어고우, 2021.6.28.)

《삶을 읽는 사고》(사토 다쿠/이정환 옮김, 안그라픽스, 2018.6.22.)

《이모 말고 고모》(이슉 글·이승현 그림, 이슉, 2021.8.1.)

《내가 좋아하는 것들, 산책》(이정하, 스토리닷, 2022)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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