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아침글을 저녁길로 (2022.6.21.)

― 인천 〈집현전〉



  어제는 부천역 언저리 길손집에서 묵었습니다. 제법 조용하다고 느꼈는데, 막상 아침을 맞이해 부천역으로 걸어가자니, 이곳은 허벌나게 지저분하고 시끄러운 먹자골목이더군요. 잠만 자러 깃들 적에는 몰랐습니다. 시골사람으로서 큰고장(도시)을 찾아올 적에 보면, 우리 시골집에서는 마당에만 서도 날마다 별밤을 누리지만, 시골 읍내조차 별밤이 없고 서울이며 숱한 큰고장에서는 별은커녕 달마저 보기 어렵습니다. 별을 잊는 마음에 어떤 사랑이 싹틀 수 있을까요.


  전철을 타고 인천역(하인천)에 내립니다. 오래된 인천골목을 조금 걷다가 〈관동부티크〉 이웃님을 만납니다. 이 골목에서 한옷(한복)을 빌려주거나 팔면서 꽃마실을 누리도록 이바지하는 일을 하십니다. 한옷집 이웃님하고 이야기꽃을 피우고서 마을책집 〈문학소매점〉을 찾아갔고, 책 석 자락을 장만하고는 신포시장 이웃 어르신 두 분을 뵙습니다. 까만머리 아저씨일 적에 알던 이웃 어르신은 어느덧 흰머리 할배가 되었습니다.


  답동성당 둘레로 무시무시하게 삽질을 해대는 슬픈 모습을 보며 싸리재를 넘습니다. 배다리에 닿아서도 곳곳에 스미는 날카로운 삽질을 느낍니다. 배다리에서 가까운 도원역 곁 숭의3동은 ‘숭의3구역 재개발’이란 이름으로 커다란 골목마을이 통째로 사라졌어요. 마지막 모습을 찰칵 담고 싶기는 하지만, 쇠삽날이 할퀸 생채기를 보자면 눈물이 왈칵 쏟아질 듯해서 그쪽은 아예 안 쳐다봅니다.


  해가 질 무렵 배다리 〈집현전〉에 깃들어 이야기밭을 일굽니다. 2022년 5월∼9월 사이에, 배다리 마을책집을 한 곳씩 돌면서 “우리말 참뜻찾기 이야기밭―우리말꽃 수다마당(우리말 어원풀이 이야기)”을 꾸립니다. 저는 2007∼2010년에 이곳 배다리에서 ‘사진책도서관 함께살기’를 꾸리다가 2011년부터 전남 고흥으로 옮겨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로 이름을 고쳐서 잇습니다. 책마루숲(서재도서관)입니다. 예전에도 느꼈는데, 막상 책집지기로 일하는 분이 ‘이야기밭(강의)’을 누릴 틈이 없어요. 장사와 살림에 바쁘시거든요.


  이달 6월에는 ‘글·그림·길·가다(문학 이야기)’를 놓고서, 이 쉬운 우리말이 어떤 뿌리이면서 서로 읽히는가를 풀면서 들려줍니다. 아주 흔하게 쓰는 쉬운 우리말부터 말밑을 찬찬히 짚을 적에, 우리는 누구나 스스로 말빛을 가꾸어 말넋을 일으키니, 스스로 짓는 즐겁고 사랑스러운 오늘살림을 이뤄요.


  딱딱하거나 어려운 일본 한자말·중국 한자말·영어로는 ‘이론·지식’에 갇힙니다. 쉬운 우리말은 삶을 가꾸고 살림을 노래하는 어깨동무 이웃말로 날개를 펴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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