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2022.6.14.

아무튼, 내멋대로 9 끼니



  ‘하루세끼’는 많을까, 적을까? ‘하루두끼’라면 배고플까? ‘하루한끼’라면 굶다가 죽을까? ‘이틀한끼’나 ‘사흘한끼’나 ‘이레한끼’는 사람을 들볶으려는 짓일까? 1996년 2월 어느 무렵 여드레 즈음 굶다가 한끼를 누린 적 있다. 그때는 싸움판(군대)에 끌려가서 밑바닥(이등병)을 기었는데, 내가 깃든 곳(강원 양구 동면 원당리 백두산부대 소총중대)은 한 달 뒤에 비움터(비무장지대)로 들어가서 여섯 달 동안 꼼짝을 안 한다고 했다. 그때 윗내기(고참)는 서둘러 말미(휴가)를 얻으면서 자리를 비웠고, 아직 뭐가 뭔지 모르던 밑바닥으로서 여드레에 걸쳐 혼자 밤샘(보초·야간근무)에 낮샘(보초·주간근무)을 잇달아 맡아야 했다. 요새야 이런 어이없는 일이 없을는지 모르나 예전에는 이런 일이 흔했다. 여드레를 밥도 잠도 쉼도 없이 보내며 “아, 이대로 죽는가? 참 재미난 개죽음이로구나. 굶는데다가 잠도 못 자고 죽는다니!” 하고 혼잣말을 했다. 그런데 용케 안 죽을 뿐 아니라, 여드레를 암것도 안 먹는데 그리 안 힘들 뿐 아니라, 잠을 못 자는데 썩 졸립지 않더라. 수수께끼였다. 안 먹고 안 자는데 왜 안 힘들지? 1997년 12월 31일에 드디어 싸움판에서 벗어나고 나서, 1998년 1월 4일부터 새뜸나름이(신문배달부)로 일했는데, ‘하루한끼 + 토막끼’로 살았다. 새뜸을 다 돌린 아침에 일터 사람이 다같이 모여 누리는 밥차림이 ‘하루한끼’요, 저녁 즈음 뭔가 얻어먹을 수 있으면 토막끼로 여겼다. 일삯으로 32만 원을 받고, 그때 외대학보사나 몇 군데에 글을 실으면서 한 달에 20만 원 즈음 글삯을 벌었으나 16만 원을 고스란히 우체국에 넣고(적금), 다른 돈은 죄다 책값으로 썼다. 버스도 전철도 안 타고 자전거로 다니거나 걸었다. 라면 두 자루 사먹는 값이면 책 한 자락을 살 수 있다고 어림하면서 ‘하루한끼’로 보내었다. 1999년 8월에 보리출판사에 들어가서 일삯 62만 원을 받을 적에는 우체국에 30만 원을 넣었고, 일삯을 토막낸 30만 원을 책값으로 삼았다. 2만 원은 보리술값. 곁일로 얻는 글삯도 모조리 책값이었다. 펴냄터에서 일하다가 저녁에 ‘작가 선생님 접대’를 맡으면 밥값을 굳힌다. ‘하루세끼’를 싫어한다기보다 ‘하루세끼’를 누리면 자꾸 졸음이 쏟아졌고, ‘하루세끼’를 할 만한 살림돈이 없었다. 앞날을 헤아린 목돈으로 토막을 내어 넣어서 잠갔고, 책값으로 몽땅 썼으니까. 2020년 즈음까지 ‘하루한끼 또는 하루두끼’라는 살림살이를 듣는 이웃은 “건강을 생각하나요?”라든지 “그렇게 가난하나요?” 하고 묻다가 “하루 한두끼로는 몸이 망가지지 않나요?” 하고 묻는다. 그러나 하루두끼보다 하루한끼일 적에 몸이 한결 튼튼하다고 느껴 왔다. 하루한끼보다 이틀한끼나 사흘한끼일 적에 넋이 밝게 깨어난다고 느껴 왔고, 나흘한끼나 닷새한끼쯤이라면 우리 모두 착하고 아름답게 살림길을 지을 만하고 느낀다. 요즈막 들어서 ‘간헐적 단식’이라든지 뭔가 어려운 말로 ‘일부러 굶기’를 하는 분이 부쩍 늘어난 듯하다. 그런데 그저 굶기만 하면 참말로 몸이 망가진다. 숲 한복판에 깃들어 고요히 꿈을 그린다든지, 풀꽃나무를 벗삼아 도란도란 이야기한다든지, 바다에 풍덩 안겨 가만히 바닷빛을 머금는다든지, 아이를 낳고 돌보면서 사랑꽃을 지핀다든지, 아름책을 곁에 두어 마음을 살찌우면서 하루한끼나 이틀한끼나 사흘한끼를 해야 비로소 마음이며 몸이 빛나면서 찌끄레기가 빠져나간다고 느낀다. 다만, 하루세끼를 챙기기에 나쁠 일이란 없다. 하루세끼 아닌 하루네끼나 하루닷끼를 즐길 적에도 매한가지이다. 몇 끼니를 누리든, 스스로 활짝 웃고 노래하면서 수다꽃을 피우면 걱정거리가 없다. 그저 때맞추어 자꾸 몸에 밥을 욱여넣으면 몸이 썩고 마음이 망가질 뿐이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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