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는 것들을 사랑합니다
임길택 지음 / 보리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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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배움책/숲노래 책읽기 2022.6.13.

인문책시렁 227


《나는 우는 것들을 사랑합니다》

 임길택

 보리

 2004.1.15.



  《나는 우는 것들을 사랑합니다》(임길택, 보리, 2004)는 《하늘숨을 쉬는 아이들》(종로서적, 1996)을 되살리고 보탭니다. 저는 1996년에 처음 나온 책을 1998년에 읽었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우리나라에 이런 길잡이(교사)가 있었구나 하고, 이런 길잡이가 깃든 어린배움터에 다닌 아이들은 하늘빛을 누리면서 마음 그대로 말을 터뜨리고 생각을 밝히면서 자랄 만했구나 하고 느꼈어요.


  어린 날 다닌 배움터를 떠올리면, 열두 해에 걸쳐 “어른이란 놈팡이는 아이를 두들겨패고 꾸짖고 괴롭히는 재미로 사나?” 싶어 매우 질렸습니다. 착하거나 참하게 말을 건네는 어른을 아주 드물게 보았고, 거의 모두라 할 만하다 싶은 어른들은 막말에 삿대질에 주먹질이 흔했습니다.


  책이름을 “하늘숨을 쉬는 아이들”에서 “나는 우는 것들을 사랑합니다”로 바꾸었는데, 새로 나온 책을 읽으며 어쩐지 못마땅했어요. 임길택 님은 틀림없이 “우는 모두를 사랑하는” 발걸음이었다고 할 테지만, 더 들여다보면 “노래하는 모두를 사랑하는” 눈빛이라고 해야 알맞다고 느끼거든요.


  아이도 새도 시골도 멧골도 나무도 들꽃도 소도 ‘울기’만 하지 않습니다. 언뜻 본다면 ‘울음’이지만, 가만히 보면 ‘노래’입니다. 우는 모두는 언제나 웃어요. 울음하고 웃음은 언제나 나란합니다. 울음하고 웃음을 품은 아이랑 새랑 시골이랑 멧골이랑 나무랑 들꽃이랑 소는 노상 ‘노래’를 ‘사랑’하는 하루를 짓는다고 해야 알맞으리라 생각합니다.


  노래하는 아이들 곁에서 우는 어른인 임길택 아저씨일 테지요. 꿈꾸며 들을 달리고 멧숲을 누비는 아이들 곁에서 울던 어른인 임길택 아재일 테고요. 어느덧 온누리 아이들한테서 노래가 사라진 듯하지만, 시골에서도 멧골에서도 어쩐지 노래가 억눌린 듯하지만, 노래할 새나 나무나 들꽃이나 소는 가뭇없이 갇히거나 이 땅을 떠난 듯하지만, 그래도 아직 노래하는 아이들이 있고, 노래순이·노래돌이 곁에서 울 줄 아는 어른이 몇쯤 있습니다.


ㅅㄴㄹ


한 해에 한 번씩은 변소를 퍼야 했다. 맘 좋은 학교 아저씨는 이런 일을 일요일에 하면서도 불평 한 마디 하지 않았다. 예전에는 서로 똥을 퍼 가려던 마을사람들이 이젠 퍼다 주어도 마다할 정도로 변해 버렸는데, 그 똥을 퍼내는 일을 늘 큰선생님이 하셨다. 사람이 덜 익었던 나는 감히 그 일을 함께할 생각조차 못 했다. (76쪽)


그 아이가 천재인지 바보인지는 큰 관심거리가 될 수 없습니다. 구태여 뛰어난 머리를 지니고 있지 않아도 가르치는 것을 성실하게 따라해내고, 맡은 일을 꼼꼼히 치러내는 아이가 가장 사랑스럽고 대견합니다. (109쪽)


동길이 아버지, 어머니가 농사를 지어선 아이들을 가르칠 수 없다면서 도회지에 나가 밤을 낮 삼아 김밥과 술을 판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그래서 어느 날 마산 버스정류장 가까이서 일하고 있다는 이분들을 찾아갔다. 장사를 하지만 마음은 늘 고향 산 속에 있다고 했다. 이다음 역사가들은 이렇게 착한 사람들이 마음 부수면서 살 수밖에 없도록 만든 이 시대를 어떻게 적어 나갈지 궁금하기만 하다. (168쪽)


내가 특수교육연구회 거창 지회장이란다. 올 사업계획과 회원명단을 내라는 공문이 와서 지난해에 나간 공문을 보고 베껴 만들었다. 하지 않는 일을 서류로만 만들어 놓고 한 해를 보내는 공무원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월급 받는 내가 한심스러울 때가 이런 때다. (1994년 3월 31일 일기/216쪽)


토요일에 도서관에서 전교 어린이회 임원 선거가 있기에 가 봤더니, 5학년 한 남자 아이가 이런 질문을 해 깜짝 놀랐다. “선생님, 전교 임원이 되면 돈 깨지지요?” 나는 아니라고 했지만 낯이 뜨거웠다. (1995년 3월 7일 일기/252∼253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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