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2022.6.5.
아무튼, 내멋대로 8 단란주점
한자말 ‘단란’은 우리말로 옮기자면 ‘도란도란’이나 ‘살갑다·아늑하다·포근하다·오붓하다’를 가리킨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단란 + 주점’이란 이름을 쓴다. “단란한 주점”이라면 아이가 있어도 느긋하거나 오붓하면서 살가이 즐길 만할 술집이란 뜻일까? 아니다. 말뜻으로 새기자면 ‘단란주점 = 오붓술집·포근술집·아늑술집’일 노릇이지만,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단란주점 = 젊은 아가씨를 옆구리에 찰싹 붙이거나 끼고서 질펀하게 술을 퍼마시면서 부비작거리는 짓으로 돈을 흔전만전 써대면서 지저분한 사내들이 우글대는 술집”이라고 해야 맞다.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면서 숲을 사랑하려는 사람이 단란주점에 갈 일이란 없고, 쳐다볼 까닭이 없으며, 어떤 곳인지 알 수도 없다. 그런데 2004년에 처음으로 단란주점을 겪어 보았다. 2004년 그때는 이오덕 어른 글을 갈무리하는 일을 맡으면서 ‘이오덕 유고시집’을 어느 곳에서 펴내도록 다리를 이으면 어울릴까 하고 알아보던 즈음인데, 이오덕 어른 글(시 원고)을 모두 한글파일로 옮겨서 종이로 뽑아 두 군데 펴냄터에 건네었더니, 둘 가운데 한 곳 대표하고 ‘나중에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맡은 시인’이 “이렇게 귀한 원고를 정성껏 정리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오탈자조차 없이 제대로 정리해 주셨네요. 이대로 책을 내면 되겠습니다.” 하고 말하면서 “시골에서 모처럼 서울까지 오셨는데 오늘 좋은 곳으로 모시겠습니다.” 하고 덧붙이더라. 나중에 장관을 맡은 시인은 “나도 같이 가고 싶은데 오늘은 어쩔 수 없는 선약이 있어서 같이 못 가서 미안하니 어쩐다. 다음에는 같이 가지요.” 하더라. 나는 “좋은 데 말고, 이야기하기에 조용한 데라면 좋겠습니다.” 했는데, “조용한 곳? 뭐 거기도 조용하다면 조용한 곳이지요.” 하면서 웃더라.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알림판(간판)’조차 없이 수수께끼 같은 굴을 한참 파고들어야 하는 술집이 있는 줄 이날 처음 알았다. 미닫이(창문)는 하나도 없다. 모두 꽉 막히고 닫힌 곳이다. 출판사 편집국장은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잘 아는지 서글서글 손을 흔들며 말을 섞는다. 우리가 앉을 칸에 들어서니, 모든 사람 옆에 ‘민소매 깡똥치마 아가씨’가 하나씩 달라붙는다. “좀 떨어져 주시지요?” “어머, 이 젊은 사장님 좀 봐. 내가 싫은가 봐?” “아뇨. 술을 마시러 왔는데 그렇게 붙으면 어떻게 마십니까.” 출판사 편집국장님은 “왜? 아가씨 바꿔 줄까?” 하셨고, “국장님, 여기가 조용히 이야기하는 곳인가요?” 했더니 “여기서 하는 얘기는 밖으로 새지 않아.” 하시더라. “국장님, 오늘 저를 이곳에 데려온 얘기는 없던 일로 하겠습니다. 저는 바깥바람을 쐬고 밤하늘을 보면서 조용히 한 모금을 기울이면서 이야기하는 곳을 바랍니다. 그만 나가지요?” “내가 최종규 씨 취향을 몰랐구나. 미안해. 다른 시인이며 소설가는 여기 데려오면 그렇게 좋아하는데, 여기 데려와서 싫어하는 사람을 처음 봤네.” “네? 시인하고 소설가가 이런 데를 좋아한다고요? ㅎ이나 ㅇ 같은 사람도요?” “그래, 여기 싫어하는 사람 없어.” “여성 시인하고 소설가도요?” “응, 좋아하는 여성 시인하고 소설가도 많아.” 이오덕 어른 시집을 펴내겠다는 출판사에서 ‘이오덕 유고를 갈무리하는 젊은이’를 ‘숨은 질펀술집(단란주점)’에 데려갔다는 얘기를 어찌저찌 들은 58년 개띠 술꾼 셋이 나중에 이러더군. “아니, 왜 우리는 안 데려가? 그런 좋은 데 가려면 우리를 같이 불러서 데려갔어야지!” 하고 출판사 편집국장한테 따지더라. 2004년 이날 뒤로 나는 ‘58년 개띠’인 사람들이 낸 시집은 안 읽는다. 다만, 58년 개띠 가운데 경남 시골로 떠난 분이 쓴 시집만 읽는다. 경남 시골에 사는 시인 아저씨는 질펀술집을 안 가시겠지?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2022년 6월 2일,
서울도서전에 갔다가
서울시청 곁 길손집에 자리를 잡고서
저녁을 먹을 데를 살피려고
서울 무교동 골목을 걷는데
‘위스키 ××’란 앞을 지나갔다.
이곳은 미닫이를 활짝 열고서
몇 조각 안 되는 얇은 깡똥치마인
아가씨들이 줄지어 앉아
이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손을 흔들면서 들어오라고 부르더라.
등골이 오싹하고 섬찟했다.
우리나라 참 대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