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일터인 도서관을 찾아오는 책손 가운데 “책 많이 모으셨네요?” 하고 여쭙는 분이 있고, “모은 책 다 읽으셨어요?” 하고 여쭙는 분이 있습니다. 이럴 때면 으레 “읽으려고 산 책이에요.” 하고 대꾸를 하고 “사 놓고 바로 읽어야만 하지는 않아요. 한두 해쯤 지나서, 또는 열 해쯤 지나서 읽어도 좋아요. 사서 바로 읽는다고 해서 그 책에 담긴 뜻과 줄거리를 오롯이 헤아린다고 볼 수 없거든요. 사 놓은 그 책을 열 해쯤 뒤에 읽고서 비로소 깨달을 수 있고, 몇 차례 거듭 읽은 끝에 서른 해 뒤에 깨달을 수 있는 한편, 열 번 스무 번을 읽었어도 죽는 날까지 그 책에 담긴 고갱이 가까이 못 다가가기도 해요.” 하고 덧붙입니다. “교보문고에 가서 ‘이야 책 많네!’ 하고 말하지는 않잖아요. 헌책방에서든 도서관에서든 마찬가지라고 느껴요. 그곳에 책이 많으냐 적으냐에 눈길을 두기보다는, 이곳에서 내 마음을 적셔 줄 책으로 무엇이 있을까, 내 마음을 움직일 책 하나를 찾아야지, 하는 생각에 마음을 두면 좋겠어요.” 하는 말도 덧붙여요. “그러면 어떤 책이 마음을 움직이는 책인가요?” 하고 묻는 분이 계십니다. 이때는, “지금 제 자신뿐 아니라 앞으로 서른 해쯤 뒤에도, 또 제 딸아들 될 사람이나 제가 죽은 뒤 제 책을 거두어서 읽을 사람한테도 우리 세상과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책이겠지요.” 하고 이야기합니다.

 우표를 모으듯 책을 모으는 사람도 있을 테고, 인형을 모으듯 책을 모으는 사람도 있겠지요. 그러면, 책은 ‘모아서 어디에 쓸모가 있을’까요. 모은 책으로 사람들 앞에서 ‘나 이렇게 좋은 책 많소!’ 하고 자랑을 할 때? 인터넷으로 책방을 열어 장사를 할 때?

 “책을 몇 권쯤 모으셨어요?” 하고 여쭙는 분들한테는 “한 권 두 권 사서 읽다 보니까, 이렇게 모이더라구요. 사서 읽은 뒤 파는 책이 있고 동무들한테 선물하기도 해서, 몇 권이 있는지 몰라요. 저한테 책이 몇 권 있는지 세어 보는 일은 중요하지 않아요. 제가 어느 갈래 지식을 얼마만큼 머리속에 가두어 두고 있는 일이 그 갈래를 제대로 아는 일이 아닌 만큼, 제가 책을 몇 권 갖추고 있다는 일이 제가 그 책들을 사랑하거나 아끼는 일이 아니라고 느껴요. 또한 늘 새로운 책을 꾸준하게 사서 읽고 책꽂이에 꽂아 두고 있으니까, 지금은 몇 권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몰라도, 바로 하루만 지나도 숫자가 바뀌어요. 한 해가 지나면 크게 바뀌겠지요. 그러면 그 숫자들은 우리가 책을 잘 읽거나 새기고 있음을, 또는 책을 읽어서 얻은 깜냥을 잘 곰삭이고 있음을 얼마나 제대로 보여줄까요?” 하고 되묻곤 합니다.

 고개를 숙인다는 ‘익은 벼’는, 누구한테나 밥이 되어 줍니다. 넉넉하게 배를 채워 줍니다. 다부지게 일하거나 놀거나 어울릴 힘을 선사합니다. 익은 벼는 제 몸을 바쳐 다른 목숨들한테 새삶을 건네주며 자기는 조용히 스며듭니다. 우리가 읽는 책은 어디로 어떻게 얼마만큼 스며들고 있을까요. (4340.6.26.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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