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2022.5.27.

아무튼, 내멋대로 4 육체노동



  1988년에 푸른배움터(중학교)에 들어가며 가장 놀란 대목은 새벽 여섯 시부터 밤 열 시까지 끊이지 않는 막말(욕)이다. 어린배움터(국민학교)를 다닐 적에는 집에서 새벽 여섯 시 무렵 나왔고, ‘고속도로 곁·공장 옆·군부대 앞·연탄공장 둘레·옐로우하우스 옆길·기찻길 기스락·골목길’을 걸어서 오갔다. 여덟 살짜리 ‘국민학교 1학년’인 1982년 3월 3일부터 내내 이렇게 걸었다. 배움터에는 으레 새벽 여섯 시 반이 안 되어 닿고, 숙직실 교사 빼고 아무도 없는 곳에 조용히 들어가 하늘바라기를 하거나 학급문고를 읽었다. 열네 살부터는 더 일찍 배움터에 갔다. 중학교에서는 05시 50분 즈음이면 배움터에 닿았고, 고등학교에서는 으레 05시 즈음이면 배움터에 닿았다. 아무튼 열네 살 푸름이는 중학교란 이름인 그곳에서 또래나 길잡이(교사) 모두 언제나 모든 말소리를 막말(욕)을 한가득 섞어 내뱉는 꼬라지를 보면서 “이게 무슨 학교인가? 감옥이지?” 하고 여겨 그만두고 싶었으나 “중졸도 아닌 국졸로 뭐 하게? 육체노동밖에 할 일이 없어!” 하고 윽박지르는 말에 주눅이 들어 겨우 버텼다. 이다음 고등학교에서는 “입시공부로 4∼5년을 버렸는데 안 아까워? 조금만 더 버텨. 적어도 대학교는 가 봐야지!” 하는 말에 자퇴할 꿈을 접고서 대학교란 곳을 어쨌든 들어가 볼까 하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막상 열린배움터(대학교)에 들어가니, 아직 첫 배움길(강의)조차 아니던 새터(새내기 새로배움터·OT)를 한다며 불러서 찾아간 1994년 2월 어느 날, 내가 다닐 갈래(학과) 윗내기(선배)가 어느 술집으로 오라 해서 한또래(동기)하고 작은 칸에 모여앉았더니, 윗내기는 우리가 들어간 칸을 밖에서 걸어잠근 다음에 “자, 너희들 오늘 여기서 이걸 다 비우지 않으면 못 나가!” 하더라. 뭔가 했더니 소주 한 궤짝을 들여놓고서, 아무 곁밥(안주) 없이 맨술(깡소주)을 다 비워야 한다더라. 나는 한국외대에서 네덜란드말을 익혀 통·번역을 할 꿈을 키우려 했는데, 길잡이(교수)를 만나기 앞서부터 질렸다. 3월 2일에는 “첫 강의는 휴강을 해야 제맛”이라며 멀뚱멀뚱 이름(출석)만 부르고 돌아가라는 길잡이를 보고서 속으로 “이 새끼들 비싼 등록금은 뒷구멍으로 처먹었나? 등록금을 받았으면 수업을 해야지, 왜 첫날부터 휴강이래?” 하고 뇌까렸다. 3월부터 7월까지 모든 배움길(강의)을 들으려니 윗내기나 한또래는 “야, 여기가 고등학교냐? 제끼고 놀러가자.”고들 하더라. “난 8교시까지 끝나지 않으면 놀러갈 생각 없어. 그리고 난 8교시가 끝나면 헌책집에 가서 적어도 두 시간은 책을 읽을 생각이니까, 나랑 놀고 싶으면 저녁 일곱 시 뒤에나 얘기해.”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그만두자고 생각했다. 대학교 자퇴는 싸움터(군대)를 다녀오고 나서 1998년 12월에 비로소 했으나, 1994년 9월, 그러니까 대학교 첫 방학이 끝난 뒤에 다짐을 했다. “너 고졸로 뭐 해 먹고 살게? 육체노동밖에 없어!” “몸쓰는 일이 나쁜가요?”“아니, 안 나쁜데, 정신노동이 돈 잘 벌어. 왜 굳이 힘든 길을 가?” “전 거짓말로 돈벌 생각은 코딱지만큼도 없습니다.” “니 코딱지는 왕코딱지냐?” 1995년 11월 6일에 싸움터로 끌려가서 스물여섯 달을 살아남으면서 앞길을 곰곰이 그려 보았다. 이제는 남(사회)이 하는 말은 안 듣기로 했다. 오롯이 내 마음빛을 읽고 내 넋이 바라보는 길을 걷기로 했다. 1997년 10월 어느 날, 별빛이 쏟아지고 별똥이 춤추는 강원도 양구 멧골짝에서 별빛지기(불침범)를 서다가 “그래, 강원도 양구 백두산부대(21사단)를 마치면 막일판(공사장)에서 일삯 만 원씩 더 준다지? 우리는 날마다 삽질로 살아가니까. 언제라도 몸일(육체노동)을 할 수 있어. 그렇다면 고졸내기로서 마음일(정신노동)을 부딪혀 보자. 마음일을 하는 쪽으로 가다가 도무지 안 되면 그때에 몸일로 바꾸자.” 고졸내기로 마음일을 할 자리는 없다시피 하지만 아예 없지는 않다. 그저 언제나 밑바닥부터 기면 된다. 머리로 글을 쓰거나 책을 다루는 일거리가 아닌, 사랑으로 글을 여미고 책을 돌보는 일거리라면 얼마든지 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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