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해맑은 하늘 (2022.4.19.)
― 대전 〈우분투북스〉
서울 종로 길손채에서 하룻밤을 묵는 날을 맞이할 줄 몰랐습니다. 조금만 나가면 큰길인 안골에 깃든 길손채는 서울 한복판이어도 조용하나, 멧새·개구리·풀벌레가 들려주는 노래는 하나조차 없습니다. 새벽에 눈을 뜨면서 우리 집 새벽노래를 떠올리고, 이슬빛을 그립니다. 서울에서 바깥일을 마치고서 대전으로 움직입니다.
이오덕 어른 큰아드님하고 함께 부릉길을 달리며 이야기합니다. 2003∼2007년 사이에도 물씬 느낀, ‘이오덕 제자’라고 내세우는 나이든 아재·아지매가 보이는 슬픈 민낯을 새삼스레 돌아봅니다. 그분들은 ‘이오덕이 아니니’까 바보짓을 할는지 모르는데, 떠난 어른 숨결을 헤아린다면 스스로 달라져야 아름다울 텐데요. 그나저나 대전으로 건너오니 제법 해맑은 하늘입니다. 한봄이 무르익는 이 하루에 빛나는 책을 곁에 두면 한결 아름답겠다고 생각합니다.
바가지를 씌우는 듯한 짜장국수를 함께 먹고서 헤어집니다. 햇볕을 듬뿍 받으며 걷습니다. 〈우분투북스〉에 이릅니다. 느긋이 책을 살피고 읽는데, 책집을 맡아 주는 분은 이곳 단골인 문광연 님이라고 합니다. 〈우분투〉 지기님이 다른 일로 바쁠 적에 곧잘 ‘손님이면서 살짝지기’로서 미리 열어 주시는군요. 새벽부터 개구리 노랫소리를 그리며 움직였는데, 문광연 님은 마침 《개구리, 도롱뇽 그리고 뱀 일기》를 써내신 분이라고 합니다. 〈우분투〉에 이분 책이 한 자락 있어서 기꺼이 장만하면서 손글씨를 받습니다.
나라지기를 새로 뽑은 지 한 달이 지납니다. 서른 살 무렵까지는 ‘누구’를 뽑아야 할까를 살폈고, 그 뒤로는 ‘왜’ 뽑아야 하는가를 살핍니다. “최선이 없으면 차악이라도 뽑으라”고 말하는 분이 있지만, “뽑을 사람이 없다면 아무도 안 뽑아야 맞다”고 느껴요. 저는 소주를 안 마시는데 참이슬·처음처럼·잎새주·진로 사이에서 고르라 하면 안 되지요. 숲·어린이·책·우리말을 등진 사람이라면 아무도 안 뽑기로 했습니다. “덜 나쁘거나 조금 좋은 책”은 읽고 싶지 않아요. 배우고 생각을 가꾸는 길에 이바지할 책을 장만할 뿐입니다.
나라지기를 비롯해 벼슬꾼(공무원·정치인)이 할 큰일 가운데 하나는 책읽기입니다. 책읽기는 스스로 돌아보며 생각을 가다듬고 이웃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짬이에요. 책읽기를 안 하는 이라면 낮은소리·높은소리 모두 안 듣더군요. 잘난책 아닌 살림책·숲책·사랑책·어린이책·그림책·우리말꽃(국어사전)을 읽고서, 글바치(비평가) 아닌 수수한 어버이 눈길로 삭일 노릇이에요. 우리나라는 돈을 좀 쥐었으되 머리가 빈 사람이 늘었어요. 숲책·어린이책을 안 읽는 늙은이가 너무 많아요.
ㅅㄴㄹ
《개구리, 도롱뇽 그리고 뱀 일기》(문광연 글·사진, 지성사, 2017.8.11.)
《오늘 하루가 작은 일생》(우미하라 준코 글/서혜영 옮김, 니케북스, 2018.5.25.)
《곤충의 몸무게를 재 볼까?》(요시타니 아키노리 글·그림/고향옥 옮김, 한림출판사, 2019.3.13.)
《전나무의 특별한 생일》(옥사나 불라 글·그림/엄혜숙 옮김, 봄볕, 2020.12.21.)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