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빛 2022.4.22.

책하루, 책과 사귀다 108 갓꽃



  고흥에 깃들고서 처음 맞는 봄인 2012년에 유채꽃을 제대로 마주했고, 갓꽃을 새롭게 만났습니다. 시골 어른은 “허허, 서울(도시)에서 살다 온 양반이라 갓꽃도 모르나? 살다 보믄 다 알아. 걱정 말게. 그라믄 유채를 어떻게 먹는지 모르겠네?” 하면서 줄기를 벗겨 속을 먹는다고 알려줍니다. 유채랑 갓도 노랗게 꽃을 피우고, 배추랑 무도 장다리꽃을 피웁니다. 꽃이 없는 푸나무는 없습니다. 모든 푸나무는 꽃이 다르게 생겼고, 결도 빛도 내음도 숨도 다를 뿐입니다. 유채꽃이랑 갓꽃이 어떻게 다른가 하고 갈라내려고 하나부터 열까지 샅샅이 보고 따지고 어림해 보았는데, 오히려 더 갈라내기 어려웠어요. 이러던 어느 해에 큰아이가 “아, 꽃냄새 좋다.” 하고 읊는 말에 귀를 번쩍 떴어요. 그래요, 눈을 감고서 가만히 꽃내음을 맡으면 갓꽃이랑 유채꽃이 다른 결을 바로 알아차릴 만합니다. 꽃내음을 가른 뒤에는 꽃빛이 다른 결을 알아채지요. 이러고서 ‘굳이 왜 갈라야 하는가’를 깨달으면서 노란 봄꽃이 벌나비한테 풀벌레한테 새한테 쥐랑 개구리한테, 그리고 바로 우리한테 어떻게 이바지하며 동무로 어우러지는가를 느끼고 누릴 만합니다. 그저 지켜보면 됩니다. 그냥 바라보면 됩니다. 서두르지 말고 늘 마주하며 함께 놀면 되어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을 꾸리는 사람.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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