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골목꽃 (2022.4.6.)

― 전주 〈물결서사〉



  인천 골목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만, 굳이 이 모습을 찰칵 담아야겠다고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림으로 안 옮겨도 마음하고 몸에 오롯이 새겼거든요. 빛꽃(사진)이란 무엇인가 하고 배운 1998년에 비로소 마을책집을 담자고 생각했어요. 글이란 언제나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 이곳을 스스로 담을 적에 빛나기에, 저로서는 책하고 우리말하고 책집 이야기를 글로 담을 만했고, 빛꽃도 이와 같더군요.


  2007년 4월부터 인천 골목마을을 찰칵찰칵 담아요. 골목구경을 오는 잿빛사람(아파트 주민)은 골목빛을 그대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구나 싶었어요. 새벽 아침 낮 저녁 밤에 따라 흐르는 빛살을, 봄 여름 가을 겨울로 흐르는 빛줄기를, 마을마다 새삼스레 어우러지는 빛결을 보려면 구경꾼 아닌 마을지기일 노릇입니다. 그런데 마을지기나 마을사람은 굳이 이녁 보금자리를 찰칵찰칵할 마음이 없어 보이더군요. 이미 마음하고 몸에 새긴 빛을 애써 다시 담을 까닭이 없다고 여기셔요.


  골목사람으로 태어나 서울내기로 한동안 살아 보았으나 다시 골목사람이 되었고, 2007∼2010년 즈음에 ‘골목빛’을 비롯해 ‘골목꽃·골목풀·골목나무’에 ‘골목고양이·골목개·골목새’에 ‘골목밭·골목숲·골목노래’에 ‘골목집·골목사람·골목벗·골목마실’ 같은 낱말을 끝없이 지었어요. 2010년에 《골목빛》이란 사진책을 내놓고서 이듬해에 인천을 훌쩍 떠나 전남 고흥 시골로 옮겼습니다. 이제는 시골사람이 되어 시골빛을 이따금 담고, 스스로 푸르게 숲으로 나아가는 오늘을 담으려고 합니다.


  아침에 일산에서 김포로 건너간 뒤 서울을 거쳐 전주까지 달립니다. 버스에서 내려 택시를 탔고, 골목을 가볍게 걸어 〈물결서사〉에 닿습니다. 달책 《전라도닷컴》에 나온 글을 읽은 지 여러 해인데 드디어 앞에 섭니다. 책집은 큰길에서 가까우나 골목안이라 호젓합니다. 가까운 곳에 잿빛집이 높지만 골목담에 나란히 선 꽃그릇에는 골목꽃이 올망졸망 올라옵니다.


  적잖은 책은 서울노래에 잿빛을 담습니다. 아니, 웬만한 책은 서울사람(도시인)한테 맞추어 태어납니다. 시골노래에 풀빛을 담은 책은 드물어요. 숲사람을 살피거나 들사람을 헤아리거나 바다사람을 그리는 책은 매우 적어요. ‘서울은 목소리’라면 ‘숲은 노래’입니다. ‘서울은 옷차림’이라면 ‘숲은 마음길’입니다.


  다 다른 집이 어깨동무를 하며 해를 나누는 골목처럼, 책도 다 다른 숨빛으로 어우러지는 다 다른 풀꽃나무이기를 바라요. 똑같은 잿빛덩이가 다닥다닥 붙으며 빼곡한 서울을 닮은 책이 아닌, 서로 새롭게 만나고 이야기하는 책으로 가려 합니다.


ㅅㄴㄹ


《할머니의 팡도르》(안나마리아 고치 글·비올레타 로페즈 그림/정원정·박서영 옮김, 오후의소묘, 2019.12.2.)

《점·선·면》(구마 겐고/송태욱 옮김, 안그라픽스, 2021.7.29.)

《감자 아이》(조영지 글·그림, 키위북스, 2022.1.5.)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을 꾸리는 사람.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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