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곁노래/숲노래 말빛

곁말 45 한누리



  푸른배움터를 마치고 들어간 열린배움터(대학교)는 하나부터 열까지 못마땅했습니다. 하루하루 억지로 버티면서 책집마실로 마음을 달랬습니다. 3월부터 7월까지 꼬박꼬박 모든 이야기(강의)를 듣다가 8월부터는 도무지 못 견디겠어서 길잡이(교수)가 보는 앞에서 배움책을 소리나게 덮고 앞자리로 나가서 “이렇게 시시하게 가르치는 말은 더 못 듣겠다!” 하고 읊고서 미닫이를 쾅 소리나게 닫고서 나갔습니다. 어디에서든 스스로 배울 뿐인데, 배움터를 옮겼기에 달라질 일이 없습니다. 언제 스스로 터뜨려 박차고 일어나 마침종이(졸업장)를 벗어던지느냐일 뿐입니다. 길잡이다운 길잡이가 안 보이니, 스스로 길을 내는 이슬받이로 살아가기로 합니다. 배움책집(구내서점)하고 배움책숲(학교도서관)에서 일하는 틈틈이 책을 읽고, 새뜸나름이(신문배달부)로 일한 삯을 모아 헌책집에서 배움책을 장만해서 읽는 나날입니다. 이해 1994년 12월 29일에 “우리말 한누리”라는 모임을 스스로 열었습니다. 싸움판(군대)을 다녀온 뒤인 1998년 1월 6일에 “헌책방 사랑누리”라는 모임을 새로 열었습니다. ‘나라’ 아닌 ‘누리’여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첫걸음은 ‘하나처럼 함께 하늘빛’으로, 두걸음은 ‘사람으로 살림짓는 숲빛인 사랑’을 그렸어요.


한누리 (한·하나·하늘 + 누리) : 널리 어깨동무를 하면서 언제나 두루 어우러지는 터전. 울타리가 없고, 따돌림이 없고, 위아래가 없고, 갈라지거나 등돌리는 일이 없고, 돈·힘·이름으로 함부로 괴롭히거나 들볶는 일이 없는 터전. (← 통일세상·평등세상·프리마켓·플리마켓·자유공간·커뮤니티·공론장)


ㅅㄴㄹ


짧게 썼으나

한국외대 네덜란드말 학과

그 강의를 이끄는 어느 교수 수업은

도무지 더는 못 듣겠다고 여겨

그 사람이 어떻게 무엇을 엉터리로 가르치고

강의실 바깥에서는 얼마나 '안 어른스러운가'를

20분 넘게 거침없이 빠르게 외치고서

강의실 앞문을 쾅 소리 나게 닫고서 

그 지긋지긋한 곳을 그만두기로 했다.


처음으로 학생한테서 지적을 받은 그 교수는

그 뒤로 아주 조금 바뀌었다고 얼핏 들었다.


#한누리

#한국외대 #대학자퇴 #자퇴이야기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을 꾸리는 사람.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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