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빛 2022.4.8.
책하루, 책과 사귀다 103 깔개
종이쓰레기터(폐지처리장)로 가는 책은 이미 책이 아닌 ‘종이쓰레기’인 터라 삽차가 퍽퍽 찍고 물을 잔뜩 뿌려 부풀려 놓습니다. 헌책집지기는 이 종이쓰레기터에서 ‘되살릴 책’을 하나하나 쥐고 헤아리면서 먼지를 뒤집어썼습니다. 걸레로 닦고 해바람에 말려 묵은 냄새를 빼내고서야 비로소 책시렁에 꽂아요. 새책을 새책집으로 보내는 ‘물류창고’에서는 책을 책으로 안 여기는 분이 많았습니다. 밟거나 던져요. 이런 모습을 보며 “밟지도 깔고앉지도 던지지도 마십시오. 다쳐서 폐기해야 하면 책임 집니까?” 하고 따졌더니 제가 일하던 펴냄터(출판사) 사장·부장한테 전화해서 “뭐 저런 새끼가 다 있냐? 잘라라!” 하더군요. ‘표절작가·역사인식이 천박한 작가’가 내놓은 책을 두어 판쯤 냄비 깔개로 쓴 적 있으나 영 찝찝해서 어떤 책도 깔개로 안 삼습니다. 철없는 펴냄터나 글바치가 내놓은 책이어도 “모든 책은 책”이니, “깔개로 삼아서 잘못했습니다” 하고 책한테 빌었어요. 2002년 무렵이었는지, 어느 헌책집 아재가 바닥에 털썩 앉으며 얘기했습니다. “난 아무리 다리가 아파도 책에 못 앉아요. 헌책이어도 책이잖아요. 살짝이라도 책에 앉으면 책이 다치고 아파요. 나중에 안 팔려서 다시 버려야 해도 아끼고 싶어요.”
ㅅㄴㄹ
다리가 아프면 흙바닥에 앉으면 된다.
흙바닥에 앉으면서
이 별을 이룬 흙을 헤아리면
우리 스스로 아름답게 피어날 만하다.
문화재이든 아니든
아무 데나 함부로 앉으면
안 될 일이라고 생각하기가 어렵다면
이런 마음이라면
우리나라가 이렇게까지
책을 뒷전으로 밀치고
도서정가제도 개악으로 뒤틀려고 하는
모든 못난 짓이
어디부터 비롯했는지
더없이 손쉽게 읽어낼 만하다.
잘못했으면
고개숙이고 빌면 된다.
잘못을 받아들이지 않고
고개숙이거나 빌 줄 모르면
바보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