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돌고돌아 (2022.2.17.)
― 부산 〈낭독서점 시집〉
푸른돌이로 책집마실 첫발을 디딘 1992년 8월 28일부터 언제나 혼자서 다니며 ‘언제가 될 지 모르나 우리나라 모든 책집을 다 가 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는커녕 짝꿍도 없이 책집마실을 다니면 책집지기님은 “젊은 사람이 책하고만 사귀고 사람하고는 안 사귀면 언제 짝을 만나 아이를 낳나?” 하고 핀잔했습니다.
싸움터(군대)에서 살아남아 삶터(사회)로 돌아온 뒤인 1998년에는 ‘책집마실을 즐기고 싶은데 어디에 있는지 잘 몰라서 못 다니는 이웃님이 틀림없이 있겠지?’ 하고 생각하며 ‘책집마실을 함께하면서 두 시간은 말없이 책읽기만 하고서, 뒤풀이 자리로 옮겨 막차 끊길 때까지 책수다를 떠는 모임’을 열었어요. 이때에 ‘서울 헌책집 꾸러미(목록)’를 짜면서 ‘책집 길그림’을 손으로 그려서 뿌렸고, 2006년에는 ‘온나라(전국) 헌책집 꾸러미’를 마무리해서 《헌책방에서 보낸 1년》에 실었습니다.
서울을 비롯해 온나라 책집을 샅샅이 살펴서 꾸러미를 엮은 뒤, 한 해 동안 오로지 자전거로만 달리면서 책집마실을 했어요. 비바람이 몰아치든 눈보라에 얼어붙든 회오리바람에 사슬(체인)이 끊어져 질질 끌어야 하든 ‘충주부터 서울까지 자전거로 책집마실’을 이레마다 다니며 바람빛을 듬뿍 머금었습니다.
우리 아이더러 숲노래 씨가 걸은 길을 디뎌 보라고 말할 생각은 없습니다. “왜 그렇게 살았어요?” 하고 누가 묻는다면 “삶이 뭔지 알고 싶어서요.” 하고 대꾸합니다.
두 아이를 맞이하고서 틈틈이 함께 책집마실을 다닙니다. 두 아이는 어머니하고도 아버지하고 달라 스스로 품는 꿈이 새롭게 있어요. 아이들이 열 살을 훌쩍 넘은 뒤에도 곧잘 함께 책집마실을 다니면 더없이 든든하면서 새삼스레 홀가분합니다. 어제 부산으로 와서 바닷가에서 묵고, 오늘은 보수동으로 옵니다. “산들보라 씨 아기였을 적에 이 골목에서 기어다니며 놀았어.” “에? 생각 안 나는데?”
노래(시)를 읊고 나누는 책집인 〈낭독서점 시집〉을 이민아 님이 진작 열었다는데 뒤늦게 알았습니다. 진작 알았으면 보수동을 오가는 길에 진작 들렀을 텐데, 이제 알았으니 이제부터 들르면 되리라 생각하고 책집 앞에 서는데, 마침 오늘은 책집지기님이 바깥일이 늦게 끝나서 닫혔습니다.
올해에 또 부산마실을 할 날이 있겠지요. ‘노래책집(시집책집)’한테 건네려고 새벽에 쓴 노래꽃(동시)을 책집 앞에 슬그머니 놓습니다. 이다음에 이곳에서 새로 만날 책을 그리며 이제 고흥으로 돌아갈 버스를 타러 사상으로 넘어갑니다.
《책숲마실》(숲노래·최종규·사름벼리, 스토리닷, 2020)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