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바닷바람 (2022.3.5.)
― 고흥 〈더바구니〉
우리가 쓸 말은 우리 마음을 꽃빛으로 담아내는 이야기일 적에 서로 즐겁다고 느낍니다. 우리가 할 일은 우리 보금자리를 숲빛으로 가꾸는 손길일 적에 서로 아름답다고 느껴요. 돌림앓이판이라고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온통 서울살림(도시생활)으로 빽빽하게 몰린 탓에 아주 조그마한 톱니 하나라도 빠지면 와르르 무너지는 얼거리가 조금 드러났을 뿐이지 싶습니다.
시골에도 앓다가 죽는 사람이 있습니다만, 서울·큰고장처럼 앓다가 죽지는 않습니다. 시골에도 풀죽임물(농약)하고 죽음거름(화학비료)이 무시무시하게 번지지만, 이 모두를 멀리하는 사람들은 포근하면서 푸르게 살림을 지어요. 마당이 없고 나무를 못 심고 흙내음을 맡지 않으면서 빗물을 마시지 않는 얼거리라면, 참으로 서울에서든 시골에서든 목이 마를 뿐 아니라 몸이 망가지리라 느낍니다.
바람이 불기에 바람을 쐬어요. 햇볕이 내리쬐기에 햇볕을 머금어요. 꽃이 피기에 꽃내음을 맡습니다. 벌나비가 날기에 벌나비 곁에 함께 웃고 춤춰요. 풀벌레가 노래하기에 풀벌레랑 사르랑사르랑 노래합니다.
작은아이를 이끌고 시골버스를 타고서 고흥읍으로 갑니다. 다시 시골버스를 갈아타고서 도양읍으로 갑니다. 녹동(도양읍)에서 내려 걷자니 바람이 셉니다. 나무를 볼썽사납게 가지치기를 한 어린배움터 곁을 지나 마을길로 접어드니 부릉소리가 가라앉고 호젓한 골목을 품은 〈더바구니〉 앞입니다. “여기에 책집이 있어요?” “응. 바로 앞에 있어.” 책집은 조그맣고 마당은 널찍합니다. 책을 두는 자리는 그리 안 넓어도 됩니다. 마당이 넓으면 넉넉하고, 나무 곁에 서거나 앉아서 해바라기를 할 수 있으면 느긋합니다.
모든 곳에는 그곳을 가꾸려는 마음이며 숨결이 흘러든다고 느낍니다. 집도 뜰도 밭도 일터도 마을도 우리 숨결이 그대로 스밉니다. 혀에 얹는 말도 손으로 옮기는 글도 남이 아닌 우리 숨결로 이루고, 손에 쥐는 책도 우리 숨결로 새깁니다.
바닷바람을 먹는 고흥군 도양읍 마을책집 〈더바구니〉입니다. 마을 어린이한테 즐거운 놀이터일 테고, 고흥으로 마실을 나오는 이웃님한테 상냥한 쉼터로 흐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라돈으로 책숲(도서관)이나 배움터(학교)를 열 적에는 언제나 너른터(운동장)나 마당을 널찍하게 놓고서 풀꽃나무가 마음껏 자라도록 돌보아야지 싶습니다. 어린이도 어른도 풀꽃나무처럼 마음껏 팔다리를 뻗고 생각을 지필 적에 비로소 웃고 노래하고 이야기할 만하거든요. 집으로 돌아가기 앞서 바닷가로 걸어가서 휭휭 부는 짠바람을 듬뿍 맞이합니다.
《두더지 잡기》(마크 헤이머 글/황유천 옮김, 카라칼, 2021.12.23.)
《어둠의 왼손》(어슐러 K.르 귄 글/최용준 옮김, 시공사, 1995.5.1.첫/2014.9.5.두벌고침)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