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파고들면 (2019.7.4.)
― 광주 〈광일서점〉
광주 계림동은 오래도록 이름난 헌책집거리였습니다. 광주라는 고장뿐 아니라 전라남도를 통틀어 글을 배워 글꽃을 피우고 싶어하던 사람들한테 아늑한 쉼터이자 배움터이면서 만남터 노릇을 톡톡히 했습니다. 이제 광주 계림동은 예전 같지 않습니다. 광주에서 나고자란 분이 보기에도 그렇고, 이 거리에서 책집을 지키는 분이 보기에도 그렇습니다.
광주는 뒤늦게 돈을 조금 들여서 이 책집거리를 살려 보겠노라고 말하는 듯하지만, 가게 얼굴(간판)을 바꾸는 시늉으로는 하나도 이바지하기 어렵습니다. 책집거리를 살리고 싶다면 길은 아주 쉬워요. 광주지기(시장)부터 이 책집거리를 날마다 드나들면 됩니다. 광주 벼슬꾼부터 이곳 헌책집에서 날마다 책을 한두 자락씩 장만해서 읽고 배우면 되고, 광주에서 길잡이(교사)로 일하는 사람들도 같이 책을 사서 읽고 배우면 됩니다. 벼슬꾼(구청장·국회의원·공무원)도 책집거리를 드나들면서 책을 사고, 저마다 읽은 책을 이웃이나 아이들한테 건네거나 다시 헌책집에 내놓으면서 이곳을 살릴 만합니다.
헌책집·헌책집골목·헌책집거리가 힘들다면 ‘책이 안 도는 탓’이에요. 책이 왜 안 도느냐 하면 ‘책집에 와서 책을 사서 읽고 다시 파는 걸음’이 확 줄어든 탓이지요. 길바닥을 갈아엎거나 문화예술가를 부른다거나 이름난 글꾼·노래꾼을 불러서 깜짝잔치를 해본들 그날 하루뿐입니다. 한 해 내내 이 거리를 느끼고 돌아보면서 사랑할 만한 길은 아주 쉬워요. 오직 ‘책’을 ‘보면’ 됩니다.
헌책집은 빌림터(대여점)도 책숲(도서관)도 아닌 책집입니다. 사람들 손길을 타고서 새롭게 빛날 책을 다루는 터전입니다. 같은 책 하나가 돌고돌면서 여러 사람 손빛을 두고두고 타며 이야기가 새롭게 자라는 자리입니다. 어느 갈래를 깊이 파거나 널리 짚으면서 곰곰이 배우고픈 이들이 찾아드는 책쉼터이자 책마당이라 할 헌책집이에요. 딱히 다른 이바지를 안 해도 되어요. ‘광주 계림동 헌책집에서만 쓸 수 있는 책꽃종이(도서상품권)’를 광주사람이며 전남사람한테 나누어 주어도 반갑겠지요. 이렇게만 하면 알아서 달라집니다.
큰길은 찻소리가 시끄럽지만 〈광일서점〉으로 들어서니 조용합니다. 책집은 어둑어둑하나, 책은 어둡지 않습니다. 헌책집지기 일터이자 살림터는 넓지 않으나 아늑합니다. 책을 만진 손마디마다 굳은살입니다. 묵은 책에는 더께가 좀 앉았으나, 더께는 닦으면 되고, 때로는 더께가 있어 손빛책이 돋보입니다. 파고들면 보는데, 안 파고들면 못 봐요. 사랑하면 보는데, 안 사랑하니 안 봅니다.
ㅅㄴㄹ
《절약생활 아이디어 399집》(편집실, 여성중앙, 1980)
《최신 생활기록부 기입자료, 용어별 실례편》(정문사, 1966)
《꾸짖지 않는 교육》(霜田靜志/박중신 옮김, 문화각, 1964)
《인문계 고등학교 국어 2 교사용》(문교부, 1970)
《신 세계사 지도》(조의설, 장왕사, 1962)
《고1 Summit 영어단어숙어집》(명보교육, 1991)
《피터 프램턴》(마셔 댈리/이은애 옮김, 은애, 1981)
《발표샘 웅변샘》(류제룡, 문화연구원, 1982)
《보우네 집 이야기》(김옥애, 세종, 1984)
《새로운 독서지도》(대한교육연합회, 1976)
《1만년 후》(애드리언 베리/장기철 옮김, 과학기술사, 1977)
《구국의 얼을 우리 가슴에 새겨준, 문열공의 생애와 업적》(나주군교육청, ?)
《김일성의 ‘조선로동당 건설의 력사적 경험’에 대한 비판》(허동찬, 경북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1987)
2019년 여름에 찾아간 이야기를
2022년 봄에야 마무리를 짓네.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