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아이 (2022.2.16.)

― 부산 〈비온후〉



  부산 살림길을 밝히는 책을 꾸준히 펴내는 ‘비온후’에서 가꾸는 책집 〈비온후〉입니다. 〈동주책방〉부터 걸어가는 골목에 부릉이가 줄잇습니다. 사람도 집도 넘치는 고장은 골목을 걸을 만하지 않습니다만, 부릉부릉 모는 분들은 골목으로 밀고 들어서지 않기가 어려울는지 모릅니다. 어른뿐 아니라 아이도 걷거나 뛰놀거나 쉴 틈이 없고, 할매할배도 천천히 걷거나 해바라기할 자리가 없어요.


  우리 작은아이랑 이웃 아이는 ‘책읽기’보다 ‘그림놀이’가 즐겁습니다. 우리 작은아이조차 하룻내 온갖 부릉소리에 시달렸고, 제대로 뛰거나 달릴 틈을 못 누렸다 보니, 왁자지껄 웃으면서 놉니다. 책집이기도 하지만 펴냄터이기도 하기에 어버이로서 쭈뼛쭈뼛하다가 마침 고흥부터 챙긴 《책숲마실》이 하나 있어 “아이들하고 시끄럽게 누려서 잘못했고 고맙습니다” 하는 마음을 건네자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미리맞기(예방접종·백신)를 안 합니다. 두 아이가 갓 태어날 적에 돌봄터(병원)에서 어버이한테 알리지도 않고서 꽂은 바늘 탓에 뒤앓이를 씻느라 대여섯 해 남짓 걸렸어요. 바늘을 몸에 꽂아야 마음이 놓이는 분이라면 미리맞기를 하면 되고, 여리고 작은 몸으로 태어나는 아이한테는 함부로 바늘을 꽂을 일이 아닙니다. 어른도 아이도 바늘질이 아닌 풀꽃나무로 우거진 숲에서 샘물하고 푸른바람을 누리면서 맨발로 뛰놀 적에 튼튼몸으로 피어난다고 느낍니다.


  〈비온후〉에 들르면 ‘비온후’에서 낸 책을 장만하자고 생각했으나 ‘비온후’ 책은 못 찾고 다른 책만 골랐습니다. ‘비온후’가 낸 책이 아니어도 빗방울 숨결이 묻어난 꾸러미일 테지요. 이곳에 건사한 책에는 빗살무늬가 흐르겠지요.


  모든 고장 아이들이 어릴 적부터 실컷 걷고 달리면서 고장숨빛을 가만히 품을 수 있기를 바라요. 야무지며 즐거운 아이로 북돋우는 밑거름이란, 놀이랑 숲이랑 마을이라고 느낍니다. 배움터를 마치면 주는 종이(졸업장)에는 삶이 없습니다.


  저는 일본스러운 한자말 ‘인문·인문책’을 안 씁니다. 모든 아이가 알아듣도록 ‘살림·살림책’이란 말을 씁니다. 이런 말을 쓰는 사람이 드무니, 이웃고장 아이들이 곧잘 묻습니다. “‘살림’이 뭐야?” “우리가 오늘 이곳에서 즐겁게 어우러지면서 살아가도록 하루를 돌보거나 살피는 길이 살림이야. 어른은 살림을 하고, 어린이는 소꿉을 하지. 아저씨는 어른이지만 아직 살림보다는 소꿉이야.”


  미리 잡은 길손집을 찾아 광안바다로 갑니다. 그런데 오늘(16일) 아닌 이튿날(17일)로 미리 잡았네요. 아차쟁이로군요. 아차 싶은 일을 또 저질렀어요. 만 원 더 치르고서 자리를 얻습니다. “아버지, 더 천천히 하셔요.” “그러겠습니다.”


《작은 풀꽃의 이름은》(나가오 레이코 글·그림/강방화 옮김, 웅진주니어, 2019.2.25.)

《도서정가제가 없어지면 우리가 읽고 싶은 책이 사라집니다》(백원근 글, 한국출판인회의, 2020.10.8.)

《1951, 소년만화가열전》(박기준·안지혜 글, 강설송 그림, 해성, 2020.12.10.)

《수수하지만 위대한 흙 이야기》(후지이 가즈미치 글/홍주영 옮김, 끌레마, 2019.8.13.)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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