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주고받는 (2021.7.29.)

― 부산 〈고서점〉



  책은 늘 장만하고 읽고 나눕니다. 하루라도 책을 안 읽는 날은 없습니다. 어린배움터에 들어간 여덟 살부터 날마다 무엇이든 읽었고, 둘레에서 흐르는 이야기에 귀기울였습니다. 서른 살을 앞두고 첫 책을 선보이고서 꾸준히 책을 내놓습니다. 이웃이 짓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스스로 살림하는 나날을 이웃한테 들려줍니다. 아이를 낳아 돌보면서 아이하고 생각을 주고받습니다. 아이 생각을 듣고 어버이 생각을 들려줍니다. 아이가 들려주는 말을 곱씹고, 아이가 되씹을 말을 속삭입니다.


  시골은 책집이 없으니 멀리 마실을 가야 책을 구경합니다. 그런데 큰고장에 살 적에 종이책만 읽지는 않았습니다. 큰고장에서는 골목이라는 책하고 자전거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무엇보다 ‘책집이라는 책’을 읽었어요.


  시골에서는 숲이라는 책에 풀꽃나무라는 책을 읽습니다. 마당으로 찾아오는 멧새라는 책을 읽고, 풀잎을 갉는 풀벌레라는 책을 나란히 읽습니다. 바람·해·별도 언제나 읽는 시골스러운 책입니다. 빛줄기는 춤짓으로 밝게 흐르는 책이라면, 그림자나 밤은 고요와 어둠으로 그윽한 책입니다.


  부산 〈고서점〉 지기님이 일제강점기에 나온 《한글》이 들어왔다면서 알려줍니다. 2001∼2003년에 〈보리 국어사전〉 엮음빛(편집장)으로 일할 적에 이 묵은 달책(잡지)을 일터 곁책(소장자료)으로 삼은 적 있으나, 제 곁에는 못 놓았습니다. 드디어 제 곁에도 《한글》을 놓는구나 싶어 기꺼이 부산으로 달려갑니다.


  책이야 책집지기님한테 부쳐 달라 할 수 있습니다만, 하루를 들여 찾아가면 더없이 즐겁습니다. 손빛책을 건사한 책집지기님 얼굴을 마주하면서 이야기를 하고 한자리에서 숨결을 느끼면서 오늘을 새록새록 돌아볼 만해요. “뭘, 책 몇 자락 산다고 요즘 같은 때에 돌아다니나?” 하고 핀잔하는 사람이 많습니다만 “요즘 같은 때이기에 더더욱 조용히 책숲마실을 다니면서 서로 마음을 달래는 눈빛을 나눌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하고 대꾸합니다.


  우리는 아무도 따질(검사·검열) 까닭이 없습니다. 우리는 누구도 억누르거나 얽맬(구속·통제) 까닭이 없습니다. 누구라도 홀가분하게 춤추고 노래하면서 얼싸안는 마을로 나아갈 노릇입니다. 부산에서 살며 우리말을 살핀 들꽃님이 건사하던 오랜 책을 쓰다듬습니다. 다른 여러 책도 어루만집니다. 어쩌면 ‘책 장만’은 핑계요, ‘책집수다’를 함께 누리고 싶어서 사뿐사뿐 책숲마실을 간다고 할 만합니다.


  사랑하며 살림하는 삶이기에 글을 씁니다. 글 한 줄에 생각을 고이 얹으니 책을 짓습니다. 마음으로 사귀려는 눈빛이기에 책집지기랑 책손으로 마주합니다.


《한글 3권 8호》(이윤재 엮음, 조선어학회, 1935.10.1.)

《한글 4권 8호》(이윤재 엮음, 조선어학회, 1936.9.1.)

《한글 11권 1호》(조선어학회 엮음, 한글사, 1946.4.1.)

《한글 12권 3호》(김병제·조선어학회 엮음, 한글사, 1946.7.12.)

《한글 109호》(최현배 엮음, 한글학회, 1955.6.1.)

《한글 123호》(정재도 엮음, 한글학회, 1958.10.9.)

《한글 125호》(정재도 엮음, 한글학회, 1959.10.9.)

《第一回全國兒童 현상작문선집》(아동문예춘추사 엮음·조선어학회 정인승 교정, 금용도서문구주식회사, 1946.7.16.)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 계몽교본 1962》(유광렬 쓰고 엮음, 성화사, 1961.12.19.)

《平和定着을 위한 또 하나의 決斷, 유엔軍司令部에 관한 6·27外務部長官聲明의 背景》(홍보조사연구소 엮음, 문화공보부, 1975.6.27.)

《세계의 책축제》(이상, 가갸날, 2019.11.25.)

《月刊 야구 20호》(월간야구사 편집실, (주)문화잡지, 1983.6.1.)

《만화동산 2 오리발 훈장님》(이두호, 한국학력개발원, 1983.4.1.)

《韓國戰爭戰鬪史 4 人川上陸作戰》(최형곤 글, 국방부전사편찬위원회1983.12.15.)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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