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노래책 2022.1.16.
노래책시렁 212
《지는 꽃이 피는 꽃들에게》
김희수
광주
1988.5.30.
글이 꽃이 되자면, 글을 쓰는 사람 스스로 꽃살림을 지으면 돼요. 글이 노래가 되자면, 글을 쓰는 사람 스스로 살림노래를 펴면 되고요. ‘글꽃’은 한자말 ‘문학’을 손질한 낱말일 수 있으나, 글이 갈 길을 밝히는 이름이라고 여길 만합니다. 오늘날 숱한 글은 스스로 꽃이기보다는 겉멋으로 흐릅니다. 스스로 노래이기보다는 자꾸 겉치레로 어수선합니다. ‘민중문학’에 ‘민중’이 있을까요? ‘민족문학’에 ‘민족’이 있는가요? 글바치가 ‘민중’이란 한자말로 가리키는 사람은 ‘민중’이란 한자말을 안 쓰고, 글꾼이 ‘민족’이란 한자말로 가리키는 사람도 ‘민족’이란 한자말을 안 써요. 그냥 ‘사람’이라 할 뿐입니다. 《지는 꽃이 피는 꽃들에게》를 무덤덤히 읽었습니다. 스물 몇 해 앞서 읽던 때에 조금 거슬리던 대목은 스물 몇 해를 지나면서 퍽 거북합니다. 돌이가 아닌 순이가 글을 쓰면서 ‘민중·민족’을 말할 적에도 살을 부비는 줄거리를 그토록 써댈까요? 글쎄, 아니지 싶습니다. 곰곰이 보면, ‘민중문학·민족문학’ 어디에서도 밥을 짓거나 설거지를 하거나 빨래를 하거나 아기를 돌보거나 집안일을 하거나 걸레를 빨거나 못질을 하거나 도끼질로 땔감을 얻는 얘기가 없지 싶습니다. 이제 겉말치레를 걷을 때입니다.
ㅅㄴㄹ
무등 아래서 / 총각처녀들 눈맞아 사랑 나누고 / 아들은 커서 더 큰 아버지 / 딸은 커서 더 큰 어머니 되고 (무등아래서/12쪽)
눈 맞았단다. / 알량한 남편을랑 사우디에 앗겨버린 / 상여집 며느리와 / 밤 몰래 부르스를 추고 돌아와 / 흙무지랭이라서 고자라 소문나서 / 장가 못가 애타던 서른 여섯을 / 던져버렸단다 박꽃도 숨죽여 / 시들어버린 저 벌판의 음흉한 밤에 (여름 悲歌/14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