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그루 열두 가지
박정미 지음, 김기란 그림 / 책읽는수요일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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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2.1.13.


책집지기를 읽다

7 순창 〈책방 밭〉과 《한그루 열두 가지》



  사흘거리(삼한사온)는 이제 사라졌다고 합니다. 꽁꽁 얼어붙는 겨울이 이레이고 열흘이고 보름이고 잇다가, 포근한 겨울이 이레에 열흘에 보름을 잇달곤 합니다. 그렇지만 사흘거리가 사라졌다기보다 ‘사흘거리를 헤아리는 마음’이 사라졌다고 해야 알맞다고 느껴요. 우리 삶은 달종이에 맞추는 길이 아니지만, 어쩐지 달종이대로 흐르는 서울살림입니다. 우리 하루는 스물네 눈금으로 쪼개어 언제부터 언제까지 일하고, 언제부터 언제까지 쉬는 틀이 아니지만, 어쩐지 스물네 눈금으로 움직이는 물결입니다.


  큰고장에서 그대로 살아가는 몸이라면 어쩔 길이 없이 달종이랑 스물네 눈금에 맞출밖에 없습니다. 큰고장은 사람을 바라보지 않고 틀을 바라보거든요. 나라지기(대통령)나 벼슬꾼(공무원)은 사람이 아닌 셈값(숫자)만 바라보고요.


  다 다른 나무이기에 다 똑같이 다루다가는 나무가 고단합니다. 다 다른 풀꽃이기에 다 똑같이 쳐다보다가는 풀꽃이 시듭니다. 볕바른 자리랑 그늘진 자리가 다르기도 하지만, 흙이 다르고 비바람이 다르고 해랑 별이 다르고 높낮이가 달라요. 다 다른 삶을 느끼면서 다 다른 풀꽃나무를 하나씩 알아차리는 살림이라면, 우리는 다 다른 키로 재미나게 어깨동무를 하면서 활짝 웃는 하루를 지으리라 생각합니다.


  전북 순창 동계면에 깃든 〈책방 밭〉은 순창 시골사람으로 하루를 돌보면서 논일에 밭일을 하고, 마을일을 슬며시 거들고, 투박한 손길로 마을책집이자 시골책집을 꾸리는 곳입니다. 시골하고 서울을 잇는 손길로 열두 달 살림길을 가꾼 보람을 《한그루 열두 가지》라는 책으로 여미어 2021년 끝날에 가만히 선보입니다.


  풀이름은 시골사람이 붙였습니다. 꽃이름도 나무이름도 시골사람이 지었습니다. 하늘을 흐르는 ‘구름’도, 구름이 흐르는 ‘하늘’도, 바다를 가르는 ‘고래’도, 고래가 살아가는 ‘바다’도, 하나같이 시골사람이 지은 이름입니다. 사람이 나누는 ‘사랑’도, 사랑을 나누는 ‘사람’도, 사람을 품는 ‘숲’도, 숲에 안긴 사람이 가꾸는 ‘살림’도, 모조리 시골사람이 붙인 이름이에요.


  이러한 낱말은 서울에서 살더라도 이럭저럭 어림하면서 알 만하지만, 스스로 숲이나 시골에 깃들어 풀꽃나무를 가만히 맞아들이는 푸른 눈빛이 되어야 속으로 깊고 넓게 헤아려서 사랑으로 누릴 만합니다.


  시골사람은 말을 어렵게 꾸밀 까닭이 없습니다. 서울사람이 되는 탓에 그만 달종이랑 스물네 눈금에 매여서 자꾸 옷차림을 꾸미고 집을 꾸미며 부릉이(자동차)를 꾸밉니다. 시골사람을 넘어 숲사람으로 나아가면 말을 쉽게 풀어낼 뿐 아니라, 새롭게 맞이하는 살림을 스스로 싱그러이 짓기 마련입니다. 숲사람이기에 사투리를 스스로 지어서 써요. 《한그루 열두 가지》는 〈책방 밭〉 지기라는 자리로 시골사람을 여미는 동안 열두 이웃한테서 배우며 열두 가지로 소꿉놀이를 하는 사이에 찬찬히 알아차리는 살림빛을 들려준다고 할 만합니다. 해마다 열두 가지 살림노래를 부르면, 이렇게 한 해 두 해 차곡차곡 여미면서 ‘한그루’가 ‘온그루’로 나아갈 테지요.



《한그루 열두 가지》(박정미 글·김기란 그림, 책읽는수요일, 2021.12.30.)



집도, 직장도 정하지 않고 시골로 내려온 저에게 마을이웃이 밭 하나를 내어주었습니다. 이곳을 내가 살아갈 터로 여길지, 앞으로 농부로 살 것인지, 아직 아무것도 정하지 못했을 때 얻게 된그 밭은 저를 이곳에서의 첫 계절을 살아 보게 했습니다. (11쪽)


수많은 논과 밭을, 어르신들의 다음을 그들이 이어받지 않았더라면 지금 이곳의 풍경은 또 어찌 되었을지 모르겠습니다. (39쪽)


벼를 키우는 것도 파는 것도 초보인 농부가 세 해째 무사히 농부일 수 있는 까닭은 주변 사람들 덕분이었습니다. 어쩌면 저는 벼농사를 짓는 것이 아니라 꼭 사람 농사를 짓고 있는 것 같습니다. (58쪽)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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