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뉘엿뉘엿 (2021.10.1.)

― 진주 〈동훈서점〉



  서울에서 혼자 살던 때에는 날마다 두서너 곳씩 책집마실을 다녔습니다. 서울은 어디를 가든 책집이 많았고, 이 책집에서 장만한 책을 저 책집으로 가는 길에 읽고, 저 책집에서 산 책을 그 책집으로 가는 길에 읽고는, 그 책집에서 맞이한 책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읽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보리술 두어 병을 챙겨요. 책벗하고 노는 날도 있으나 혼자서 책하고 수다를 떨며 즐거웠습니다.


  곁님을 만나 아이를 낳고 보니 책집마실은 고개 너머 고개입니다. 살면서 ‘책집마실을 안 하는 날’이 생겼고, 살림집을 시골로 옮기고 보니 ‘책집마실을 하는 날’은 손으로 꼽을 만큼 줄어듭니다. 시골엔 책집이 없으니까요.


  바깥일을 보러 나갈 적에 어떻게든 쪽틈을 내어 책집을 찾았습니다. 곁님·아이·풀꽃나무·해바람비한테서도 삶을 새롭게 읽는 눈을 뜨는 길을 맞아들이지만, 이곳에서 몸뚱이를 입고 사는 동안에는 책집을 동무하고 싶거든요. 어느덧 작은아이가 열한 살을 넘어서는 2021년부터 집일을 아이들한테 맡기고서 이따금 느긋이 책집마실을 나섭니다. 이튿날 대구에 갈 일을 앞두고 여수책집을 먼저 찾고, 진주로 건너와 〈형설서점〉을 들르고서 〈동훈서점〉으로 넘어옵니다. 꼭두새벽에 길을 나선 몸은 뉘엿뉘엿 해질녘이 되니 꽤 고단합니다. 녹초가 되도록 걷고 책짐을 이고 온갖 이야기를 돌아보면서 밤을 맞이합니다. 책은 우리한테 어떻게 이바지하면서 삶을 헤아리도록 북돋울까요?


  마음을 틔우는 사람이라면 곁님 눈빛에 아이 눈망울을 지긋이 마주하면서 날개를 펼 줄 압니다. 마음을 여는 사람이라면 풀꽃나무한테 깃드는 벌나비랑 동무하면서 춤출 줄 압니다. 마음을 돌보는 사람이라면 해바람비에 서린 숨빛을 고이 누리면서 스스로 사랑이라는 말 한 마디를 터뜨릴 줄 압니다.


  곁님하고 아이를 마주하듯 책을 살핍니다. 풀꽃나무하고 벌나비랑 동무하듯 책을 읽습니다. 해바람비가 푸른별을 어루만지듯 새책도 헌책도 나란히 품습니다.


  스스로 별빛이 되는 사람이라면 손에 쥐는 책도 빛난다고 느껴요. 스스로 햇빛이 되는 사람이라면 손수 쓰는 글마다 반짝인다고 느껴요. 이름난 책을 찾으려고 책집마실을 하지 않습니다. 잘팔리는 책을 읽으려고 책집마실을 하지 않아요. 새롭게 마음으로 사귈 숨결은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퍼져서 이곳을 노래하는가 하고 알아보려는 뜻으로 책집마실을 합니다. 한 손에 저녁놀을 담고, 다른 손에 붓을 쥡니다. 한 귀에 이야기를 담고, 다른 귀에 바람소리를 놓습니다. 책집을 찾아갈 틈을 내는 마음이라면, 살림집을 아끼는 손길을 뻗을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ㅅㄴㄹ


《1929, 미국대공황》(F.L.알렌/신범수 옮김, 고려원, 1992.5.10.)

《아이러니》(D.C.Muecke 글/문상득 옮김, 서울대학교출판부, 1980.4.15.첫.1983.1.30.셋)

《笑劇》(Jessica Milner Davis/홍기창 옮김, 서울대학교출판부, 1985.12.20.)

《中國秘傳 形意拳》(佐藤金兵衛 글/구송령 옮김, 대아출판사, 1979.3.30.)

《표류교실 1》(우메즈 카즈오 글·그림/장성주 옮김, 세미콜론, 2012.12.28.)

《통일비빔밥》(신현득 글·이호백 그림, 재미마주, 2019.6.15.)

《한국 傳來 ‘옛날 이야기’ 集》(한국고전연구회 엮음, 지하철문고사, 1980.12.10.)

《음운론》(J.L.Ducher/오원교·이승대·양영숙 옮김, 신아사, 1983.10.30.

《익살꾼 성자 나스룻딘》(이드리스 샤아 엮음/이아무개 옮김, 드림, 2010.10.1.)

《DrangonBall Z 1》(Akira Toriyama/Lillian Olsen 옮김, VIZ media, 2008.3.첫/2016.4.여덟)

《디즈니 그림명작 20 길 잃은 뱀비》(신동운·장수철 글, 계몽사, 1982/1986.3.30.중판)

《디즈니 그림명작 42 용감한 사냥군 히아와타》(유겨환 글, 계몽사, 1982/1986.5.30.중판)

《디즈니 그림명작 44 사랑스런 딱정벌레차》(이종욱 글, 계몽사, 1982/1986.5.30.중판)

《디즈니 그림명작 54 더크 할머니와 게으름장이들》(석용원 글, 계몽사, 1982/1986.5.20.중판)

《디즈니 그림명작 55 행복한 퐁고와 퍼디》(이종욱 글, 계몽사, 1982/1986.5.20.중판)


글.사진 : 숲노래(최종규)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에서 서재도서관을 꾸리고 숲살림을 짓습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이 쓰고 남긴 글을 갈무리했고, 공문서·공공기관 누리집을 쉬운 말로 고치는 일을 했습니다.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곁책》,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내가 사랑한 사진책》, 《골목빛》, 《자전거와 함께 살기》, 《사진책과 함께 살기》, 《책숲마실》 같은 책을 썼습니다. hbooklov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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