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아이들은 (2021.4.23.)

― 포항 〈민들레글방〉



  어른들은 갈 곳이 많습니다. 어른들은 돈을 벌어서 쓰니까 이곳도 가고 저곳도 갑니다. 아이는 어른한테서 돈을 받아야 어디인가 갈 만하지만, 아이 스스로 다닐 만한 데는 마땅하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오락실’이었다면 요새는 ‘피시방’일 텐데, 이곳은 아이한테 얼마나 즐겁거나 밝은 터전일까요? 아이한테 맞추는 곳은 없이 오직 어른한테만 맞추지 않나요?


  지난날에는 마을 곳곳에 빈터가 있고 골목이 있어 아이들이 숨을 돌리거나 놀 틈을 찾았습니다. 지난날에는 서울·큰고장에도 풀숲이며 나무에 냇가가 있어 들놀이를 스스로 누릴 만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어디이든 부릉이가 뒤덮고 빈터란 아예 없으며 나무도 냇가도 아이한테 트인 자리하고 멉니다.


  포항 〈달팽이책방〉 곁에서 〈민들레글방〉은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느긋이 머물면서 책으로 쉴 만한 터전이지 싶습니다. 그림책도 꽃글책(동화책)도 넉넉하지만, 책집 앞에 빈터가 있고, 책집 곁 빈집이 돌보던 텃밭이 있어 풀내음·꽃내음을 살짝 누릴 만합니다. 여기에 나무 몇 그루 우람히 선다면 얼마나 즐거울까요.


  책만 읽어서는 슬기롭게 자라지 않습니다. 햇볕에 타서 까무잡잡한 살갗이 되고, 마음껏 뛰놀며 구슬땀을 흘리다가 문득 쉴 참에 책을 펼 수 있다면 슬기롭게 자랍니다. 나라 곳곳에 책숲(도서관)이 꽤 들어서는데, 마당을 널찍하게 두면서 아이도 어른도 맨발로 실컷 뛰놀고 나무를 타며 풀밭에 드러누워 낮잠을 누릴 만하도록 마음을 기울이는 데는 아직 하나도 없다고 느낍니다.


  책은 책대로 살뜰히 살피고 건사하고 솎아서 아이한테 건넬 어른입니다. 우리나라에는 배움수렁이 있는 탓에 어린이한테 아름책만 베풀려는 펴냄터만 있지 않아요. 또한 나라(정부)가 꾀하는 틀대로 길들이려는 책으로 장사하는 펴냄터도 있어요. 이런 갖은 책을 어른·어버이가 눈을 밝게 뜨고서 가려내어야 아이들이 새록새록 배울 만합니다.


  마을 한켠에 아이들이 뛰놀다가 쉬면서 책을 쥘 만한 터전을 일구는 어른이 있다면, 이 마을은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마을은 목돈으로 가꾸지 않아요. 마을은 아이를 사랑하는 숨결로 가꿉니다. 마을은 삽차가 부릉부릉하면서 뭘 뚝딱뚝딱 세워야 살아나지 않습니다. 마을은 슬기로이 살림짓는 어른·어버이가 오롯이 사랑이란 마음으로 아이를 품고 돌보면서 함께 배울 적에 비로소 살아납니다.


  아이한테 책을 읽히기 앞서 한나절 뛰놀 틈을 내요. 아이한테 글을 가르치기 앞서 풀밭하고 숲하고 바다하고 들하고 냇가를 실컷 누빌 짬을 내요.


ㅅㄴㄹ


《15살 자연주의자의 일기》(다라 매커널티/김인경 옮김, 뜨인돌, 2021.3.25.)

《살아 있는 모든 것들》(신시아 라일런트/부희령 옮김, 문학과지성사, 2005.4.18.)

《내 안에 나무》(코리나 루켄/김세실 옮김, 나는별, 2021.4.7.)

《마사이족의 영혼》(로라 버클리/송호빈 옮김, 주니어북스, 2010.5.10.)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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