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빛 2021.11.12.
헌책집 언저리 : 책수레
가게를 얻거나 내면서 책집을 꾸리는 분이 있고, 가게를 얻지 못하고 손수레를 끌면서 천천히 이곳저곳 옮기는 분이 있습니다. 손수레를 끌며 헌책집에 책을 내주는 샛장수 일을 하다가 책집을 차리는 분도 있어요. 그리고 마지막까지 책수레장수로 살림길을 잇는 분이 있습니다. 모든 책집은 처음에는 길바닥에 자리나 보자기를 깔고서 책 몇 자락 얹은 모습이었습니다. 이다음에 책수레가 태어나고, 이다음이 비로소 책집입니다. 등짐이나 지게로 책을 나르며 저잣거리를 돌던 책장수가 있어요. 책수레를 끌면서 여러 마을을 이은 책장수가 있고요. 서울 서대문·광화문·종로·동대문·청계천을 죽 책수레를 끌던 할아버지를 여러 해 만났습니다. 젊은이보다는 할배 눈길을 끌 만한 책을 싣고 다니셨습니다. 어느 자리에 머물면서 책손을 기다릴라치면 어느새 경찰이 다가와서 “할아버지, 여기서는 노점 금지입니다. 다른 데로 가셔요.” 하고 큰소리를 냅니다. 책수레 할아버지는 다리를 얼마 쉬지 못하고 수레를 끕니다. 거님길로는 갈 수 없어 찻길로 들어서면 시내버스가 빵빵거립니다. 때로는 창문을 열고 “할아버지! 버스전용차선으로 다니면 위험해요! 인도로 올라가셔요!” 하고 소리치기도 합니다. 책수레 할아버지는 걷고 또 걷고 다시 걷습니다. 책수레 할아버지는 날마다 경찰한테서 버스일꾼한테서 또 숱한 사람들한테서 숱한 잔소리를 듣습니다. 책수레 할아버지 곁에 다가가서 “이 책 살게요. 고맙습니다.” 하는 목소리를 들려주는 책손이 있을까 싶어 몇 시간쯤 책수레 할아버지 뒤를 천천히 따라서 걷다가, 오르막에서는 수레를 천천히 민 적이 있습니다.
* 사진 : 서울 종로에서, 책수레.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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