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빛 2021.11.10.
헌책집 언저리 : 책집고양이
이제는 개나 고양이가 곁벗(반려동물)으로 책집에 함께 있기도 하지만, 지난날에는 개나 고양이가 섣불리 함께 있기 힘들었습니다. 반기거나 좋아하는 사람 못지않게 꺼리거나 싫어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서울 용산 〈뿌리서점〉 지기님은 길짐승한테 밥을 줄 생각도, 책집에 곁짐승으로 들일 생각도 없었습니다. 이러던 2003년 어느 날 길고양이가 책집 구석에서 새끼를 낳아 젖을 물리는 모습을 보았다지요. 처음에는 얼른 내쫓으려 했지만, 젖을 물리는 어미 고양이, 또 젖을 빠는 새끼 고양이를 보고는 차마 내쫓지 못했답니다. 어찌해야 하나 망설이다가 종이꾸러미로 집을 마련해 주고, 새뜸(신문)을 깔아 줍니다. 길고양이가 아무 데에나 똥오줌을 누면 책이 다치고 책에 냄새가 밸까 몹시 걱정스러웠지만, 새끼가 다 커서 떠날 때까지 고이 건사해 주었습니다. 이런 뒤에는 책집 바깥에 길고양이 밥그릇을 마련해 놓았어요. 〈뿌리서점〉을 날마다 찾는 단골이 묻습니다. “어, 여보게 김 사장, 자네 고양이 싫어한다고 안 했나?” “내가 언제 싫어한다고 했나.” “허허, 말 바꾸는 것 보소.” “저런 젖먹이를 어떻게 내보내. 여기서 새끼를 낳았는데 다 클 때까지는 밥을 줘야지.” “허허, 이제 동물애호가가 다 되셨구만.” “동물애호가라니. 누구라도 젖먹이 새끼를 보면 그냥 두고 밥을 줘야지.” 이때부터 여러 해 동안 길고양이가 헌책집을 드나들었는데, 문득 어느 해부터 발길을 끊습니다. 밥그릇을 내놓아도 그대로였다고 합니다. “얘들이 잘 사는가, 죽었는가 걱정이 되네. 여보 최 선생, 최 선생은 어떻게 생각하나? 얘들이 살았을까, 죽었을까? 밥을 먹으러 안 온 지가 한 달이 넘네.” 석 달 동안 밥그릇이 비지 않자 길고양이 밥그릇을 치우셨습니다. 이때 뒤로 〈뿌리서점〉 지기님한테 길고양이 이야기를 묻는 사람도 사라졌습니다. 아주 가끔 다른 길고양이가 책집 앞을 스치면 바삐 일하시다가도 한동안 이 모습을 지켜보시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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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서울 뿌리서점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