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빛 2021.11.10.
헌책집 언저리 : 굴다리 헌책방
이제 사라지고 없습니다만, 서울 공덕동 ‘굴다리’ 곁에 헌책집이 조그맣게 있었습니다. 굴다리 곁에는 ‘갈매기살 고기집’이 줄지었고, 이 끝자락에 골마루 하나만 있는 무척 좁은 헌책집이 있었지요. 헌책집이 있다고 할 적에는 그곳을 찾는 책손이 있다는 뜻입니다. 널리 알려지지 않았더라도 마을에서 찾는 발걸음이 있으며, 먼걸음으로 찾는 나그네도 있기 마련입니다. 부릉이(자동차)를 몰지 않기에 늘 걷거나 자전거를 탑니다. 볼일 때문에 지나가든, 다른 헌책집을 돌다가 지나가든, 일부러 골목 안쪽이나 마을 한켠을 걷습니다. 헌책집이 큰길가에도 있을 수 있지만, 웬만한 곳은 호젓하거나 조용한 데에 있어요. 공덕동 굴다리 곁에 있는 헌책집은 2000년 어느 날 처음 만났습니다. 그무렵은 출판사 영업부 일꾼으로 지내며 잔심부름을 도맡았는데, 새로 나온 책을 한겨레신문사에 가져다주고서 돌아나오다가 “공덕동 골목에도 헌책집이 있을 텐데?” 하고 생각하며 일부러 이 골목 저 골목을 돌다가 만났어요. 고기집이 아닌 헌책집에 책을 보러 온 젊은이를 놀랍게 바라보는 책집지기님한테 “사장님, 이곳은 책집 이름이 뭔가요?” 하고 여쭈었어요. “우리? 우리는 이름이 없는데? 그냥 ‘이름없는 책집’이야.” 이무렵까지 따로 알림판을 안 세우고, 전화번호도 없이, 조그맣게 꾸리는 마을 헌책집이 꽤 많았습니다. 그래서 ‘성북동 이름없는 헌책집’이라든지 ‘북가좌동 이름없는 헌책집’이라든지 ‘애오개 이름없는 헌책집’처럼 ‘이름없는 헌책집’ 앞에 그 책집이 깃든 마을이름을 붙이곤 했어요. 저는 이무렵 새로 만난 공덕동 ‘굴다리’ 곁 헌책집이 사랑스럽고 반가워서 혼자 〈굴다리 헌책방〉이라는 이름을 붙여 보았습니다. ‘장수갈매기 고기집’ 사장이자 ‘공덕동 이름없는 헌책집’ 사장인 분은 나중에 제가 붙인 이름을 여러 책손한테서 듣습니다. 공덕동 작은 헌책집을 찾아가는 길을 손으로 그림을 그려서 둘레에 돌리니, 여러 이웃님이 이곳을 찾아가서 “여기가 〈굴다리 헌책방〉 맞습니까?” 하고 물었다고 합니다. 하루일을 마치고 이곳을 찾아간 어느 날 저녁, ‘공덕동 이름없는 헌책집’ 지기님이 넌지시 묻습니다. “자네가 우리 가게를 〈굴다리 헌책방〉이라는 이름으로 말했는가?” “아! ‘이름없는 헌책집’이라고만 하기에는 이 예쁜 곳을 제대로 알리기 어렵다고 생각했어요. 이름을 함부로 붙여서 잘못했습니다.” “아니야, 아니야. 이름이 마음에 들어서 그래. 우리 가게 이름도 지어 주었는데, 저기 옆(장수갈매기)에 좀 가서 앉으시지? 책이야 나중에 또 와서 봐도 되잖아?” 이때 〈굴다리 헌책방〉 지기님이 ‘장수갈매기’ 지기인 줄 처음으로 알았고, ‘책값으로 살림돈을 늘 다 쓰느라 밥값이 없이 하루하루 살던 가난뱅이 책마실꾼’은 ‘고기에 밥에 술까지’ 푸짐하게 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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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서울 굴다리헌책방.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