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곁노래

곁말 12 주제



  어릴 적부터 “○○하는 주제에” 소리를 익히 들었습니다. “힘도 없는 주제에”나 “골골대는 주제에”나 “못하는 주제에”나 “말도 더듬는 주제에” 같은 소리에 으레 주눅들었어요. “넌 그냥 쭈그려서 구경이나 해” 하는 말을 들으며 스스로 참 못났구나 하고도 생각하지만, ‘난 스스로 내 주제를 찾겠어’ 하고 다짐했어요. 어릴 적에는 우리말 ‘주제’가 있는 줄 모르고 한자말 ‘주제(主題)’인가 하고 아리송했습니다. 나이가 들고 나서는 “돈없는 주제에”나 “안 팔리는 주제에”나 “시골 주제에” 같은 소리를 곧잘 들으며 빙그레 웃어요. “주제모르고 덤벼서 잘못했습니다” 하고 절합니다. 이러고서 “돈없고 안 팔린다지만, 늘 즐겁게 풀꽃나무하고 속삭이면서 노래(시)를 쓰니, 저는 제 노래를 부를게요.” 하고 한마디를 보태요. 나설 마음은 없습니다. 들풀처럼 들숲을 이루면 넉넉하다고 여깁니다. 손수 지으면 모든 살림이 아름답듯, 언제나 끝없이 새롭게 샘솟는 손빛으로 신나게 글꽃을 지어서 그대한테 드릴 수 있어요. 이러고서 “돈있는 주제라면 둘레에 널리 나눠 주셔요. 저는 글쓰는 주제라 글꽃을 드리지요.” 하고도 읊습니다. 왁자지껄한 소리는 때때로 바람에 흘려 하루를 잊도록 쓰다듬어 주기도 하더군요.


주제 : 볼만하거나 넉넉하거나 제대로라 하기 어려운 모습·몸·몸짓·차림새 (못나거나 모자라다고 여길 만한 그릇·살림·삶)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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