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낮을 먹는 낯 (2021.10.1.)

― 여수 〈낯 가리는 책방〉



  고흥하고 여수 사이에 다리를 놓았다지만, 부릉이가 있는 사람이 다니기에 좋을 뿐입니다. 두 고장 사이를 잇는 다리에는 시외버스나 시골버스가 안 다닙니다. 시외버스로 한참 돌아 두 시간 만에 여수에 닿고, 시내버스로 갈아타고 골목을 걷습니다. 가을볕이 후끈합니다. 곳곳에 우람하게 자란 나무가 있어 나뭇잎을 살랑이는 바람이 햇살을 튕기면서 눈부시고 시원합니다.


  아침 11시에 여는 〈낯 가리는 책방〉인데 30분쯤 일찍 닿습니다. 책집 옆에는 새뜸나름터(신문사지국)가 있고, 바깥마루(평상)가 있어요. 이곳에 등짐을 내리고 앉아 해바라기를 하면서 노래꽃(동시)을 씁니다. 맞은켠 가게 앞에도 바깥마루가 있습니다. 가만 보면 골목을 이룬 마을 한켠에는 바깥마루가 곳곳에 있어요. 가게지기나 손님이 쉬며 수다를 나누면서 나그네도 쉬는 자리입니다.


  햇볕도 햇빛도 듬뿍 들어오는 〈낯 가리는 책방〉입니다. 한여름에는 제법 더울는지 모르나 바람이 훅 끼치면서 싱그러이 감쌀 만하지 싶어요. 겨울에는 여닫이만 닫아 놓아도 포근한 기운이 두루 퍼질 테고요.


  해는 마을을 고루 비춥니다. 바람은 마을을 두루 어루만집니다. 해는 골목을 따사로이 보듬습니다. 바람은 골목에서 돋는 들풀을 빙긋빙긋 쓰다듬습니다. 책집 걸상에 앉아 햇살을 누려도 좋을 테고, 이웃가게 바깥마루에 슬쩍 앉아 햇살을 누려도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마을이란 모름지기 어울림이니까요.


  햇볕을 듬뿍 머금는 풀꽃나무는 튼튼하고 푸릅니다. 햇볕을 못 머금는 풀꽃나무는 시들시들합니다. 사람도 매한가지라고 느껴요. 온몸으로 봄여름가을겨울을 누리면서 온마음으로 네철을 고루 헤아릴 적에 온빛으로 가득한 숨결로 살아갈 테지요.


  오늘은 진주에서 하루를 묵고 이튿날 대구로 건너갈 생각입니다. 순천서 진주로 가는 버스를 타려면 〈낯 가리는 책방〉에 오래 머물 수 없습니다. 이다음에는 느긋이 머물기로 하고 기차나루로 걸어갑니다. 박람회를 열었던 집이 커다랗습니다. 이런 커다란 집으로 구경손(관광객)을 모으겠다며 여러 고장이 큰돈을 들이는데, 앞으로는 큰돈·큰집이 아닌 살림돈·마을살림을 바라보는 길을 살피기를 바라요.


  골목이 골목스럽게 해를 나누고, 마을이 마을답게 풀꽃나무를 품을 적에, 어느 골목하고 마을이든 사람들 스스로 조곤조곤 살림을 가꾸리라 생각합니다. 몇몇 주머니로 들어가는 큰돈이 아닌, 누구나 누리는 살림돈일 적에 삶터가 눈부십니다. 밑살림돈(기본소득)이란 어깨동무를 하는 길이에요. 고르게 마을삶빛을 일군다면 검은돈도 뒷돈도 사라지면서 다같이 환한 낯빛으로 노래하리라 봅니다.


《신령님이 보고 계셔》(홍칼리, 위즈덤하우스, 2001.8.28.)

《파도수집노트》(이우일, 비채, 2021.9.17.)

《급식드라이빙》(조교, 인디펍, 2021.8.20.)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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