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39 치마돌이
치마를 두르고서 돌아다니면 으레 할머니나 아줌마가 뒤에서 수군거립니다. “남자가 치마를 입었네?” 수군거리는 할머니나 아줌마한테 다가가 그분들 눈높이로 몸을 숙이고 눈을 똑바로 보면서 한마디 여쭙니다. “여자가 바지를 입었네?” “바지를 두르며 살아갈 수 있는 순이”는 어느새 “치마를 벗고 바지를 꿸 수 있는 길”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가시밭길을 걸었는가를 잊은 듯합니다. 때로는 치마를 두르고 때로는 바지를 두르며 살아갈 길을 열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는가를 까맣게 잊었구나 싶어요. 바지돌이 아닌 치마돌이로 살며 이 대목을 새록새록 느낍니다. 제가 “치마돌이로서 받는 눈길”은 “바지순이를 처음 걷던 이웃이 받은 눈길”보다 크면 컸지 안 작았으리라 여깁니다. 돌이도 순이처럼 스스로 바라는 때나 자리에 맞게 바지나 치마를 마음껏 입으면 됩니다. 순이라서 머리카락을 길러야 하지 않고, 돌이라서 머리카락을 짧게 쳐야 하지 않습니다. 즐겁게 지을 살림을 생각하고, 기쁘게 가꿀 하루를 그리고, 사랑으로 여밀 노래를 부르면 돼요. 남이 많이 읽기에 따라서 읽을 책이 아닙니다. 꾼(전문가)이 풀이한 대로 읽을 책도 아닙니다. 우리 삶걸음대로 마주하고 누리고 사랑하면서 한 손에 얹는 푸른노래인 책입니다. ㅅㄴ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