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바닷바람 (2021.7.17.)

― 제주 〈바라나시 책골목〉



  어제는 제주 애월읍 이웃님하고 밤 한 시까지 이야기했고, 오늘은 새벽에 하루 글거리를 서둘러 추스르고서 아침 일찍 길을 나섭니다. 〈주제 넘은 서점〉에 들르고서 제주 시내로 자전거를 달리는데 길잡이(내비게이션)를 보고서 달린 지는 요 제주마실이 처음이라 자꾸 엉뚱한 곳으로 새요. 제가 보기엔 이쪽으로 가라는구나 싶어 ‘이쪽’으로 갔더니 길잡이 화살은 차츰 엉뚱한 곳으로 갑니다. “응? 이쪽이 아닌 요쪽이니?” “에? 이쪽이 아닌 그쪽이야?” 길이로 치자면 〈주제 넘은 서점〉부터 제주 시내 〈바라나시 책골목〉까지 고작 20킬로미터 안팎입니다. 제 다리로는 자전거로 한 시간이 안 될 길인데, 막상 이 길을 거의 네 시간을 걸려서 갔습니다.


  그만큼 샛길로 자꾸 빠졌고, 샛길로 빠진 김에 마을길이며 바닷길이며 멧길을 신나게 탔습니다. 제주책집을 자전거로 다니며 등짐은 가벼워지기는커녕 자꾸 묵직해만 갑니다. 이러다 보니 무릎하고 허벅지가 끙끙거려요. “넌 왜 이렇게 나(무릎·허벅지)를 힘들게 하니?” “잘못했어. 조금만 돌아가면 되나 봐. 조금만 더 달리고 쉴게.” “말은 그리 하면서 언제 쉬니?” “조금만 더 가고 쉬면 …….”


  하가에서 신엄을 갔다가 구엄을 지나 수산·장전으로, 상귀·하귀를 돌며 가문동으로, 동귀·외귀를 지나 이호테우에서 노형동으로, 이러다 도두 ·용담을 거쳐 하늘나루가 코앞에서 보이는 곳에서 한참 쉽니다. 용두암 바닷가를 지나 용연구름다리에 이르니 비로소 오늘 자전거길 끝이 보일 만합니다. 용담쉼터에 너럭바위가 있기에 자전거를 세우고 손낯을 씻은 뒤 벌렁 눕습니다.


  나무그늘에 눕다가 앉아서 ‘길지 않은 길을 얼마나 빙그르르 돌았는가’를 헤아립니다. 빙그르르 돌았다지만, 자전거가 있기에 한결 신나게 골골샅샅 누비면서 마을살림을 보고 구름밭을 누리고, 바닷바람에 땡볕을 머금었구나 싶습니다. 너럭바위를 끼고 한참 쉰 다음 일어납니다. 뜨거운 짜이 한 모금을 마시자고 여기며 〈바라나시 책골목〉으로 천천히 갔는데 이레끝(주말)은 쉰다는 알림판을 봅니다. 오호라, 오늘이 흙날(토요일)이로군요. 이레끝은 누구나 쉴 만한 때라고 생각해요. 책집도 찻집도 쉬어야지요. 이제 오늘은 자전거는 그만 탈 테니, 〈바라나시 책골목〉 앞에서 바닷바람을 쐬고 햇볕을 머금으면서 허벅지랑 등허리를 주무릅니다. 지난 닷새 동안 이고 지고 다닌 책 하나를 꺼내어 넉줄글을 씁니다. 마을책집을 찾아갈 적에 제가 쓴 책을 으레 등짐에 얹어 챙깁니다. 지난 닷새 동안 짊어진 책을 오늘 비로소 내려놓습니다. 팔이나 붓으로뿐 아니라, 다리랑 등허리로 쓰고, 빨래하고 아이 돌보는 손으로 쓰고, 햇볕에 바닷바람으로 쓴 책 한 자락입니다.


ㅅㄴㄹ


《우리말 글쓰기 사전》(숲노래·최종규, 스토리닷, 2019.7.22.)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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