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

책숲하루 2021.6.13. 엑기스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국어사전 짓는 서재도서관)

: 우리말 배움터 + 책살림터 + 숲놀이터



  서너 해쯤 앞서 “영어 손질 꾸러미(영어 순화 사전)”를 갈무리하면 좋겠다고 여쭌 분이 ‘엑기스’란 낱말을 놓고 한참 헤매고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속으로 ‘왜 힘들지?’ 하고 아리송했어요. 그분은 ‘엑기스’가 영어가 아닌 일본말인 줄 알기는 하지만 어떻게 풀거나 옮겨야 할는지 못 찾았다고 하셔요.


  일본말이나 영어나 한자말이나 독일말, 또는 네덜란드말이나 포르투갈말이나 에스파냐말을 쓴대서 잘못이 아닙니다. 생각을 안 하는 채 쓰기에 말썽이 됩니다. ‘엑기스’ 같은 얄딱구리한 말씨가 이 땅에 깃들기 앞서도 ‘엑기스란 말로 가리킬 살림’은 이 땅에도 어엿하게 있습니다. 그러니 예전에 살림하던 사람들이 어떻게 가리켰을까 하고 생각하면 돼요. 또는 시골에서 살림하는 사람들 말씨를 헤아리면 되고, 집에서 수수하게 살림지기 노릇을 하던 할머니나 어머니 말씨를 떠올리면 되어요.


  우리말은 ‘알뿌리’이지만, ‘구근’이란 한자말을 써야 꽃밭일(원예·조경)을 하는 듯하다고 여기는 꾼(전문가)이 많습니다. ‘알뿌리’는 석 글씨라 길다고 손사래치는 분도 있어요. 이때에는 빙그레 웃으며 “옛날에는 그냥 ‘알’이라고만 했어요. ‘알’은 글씨가 하나라 더 짧은걸요?” 하고 대꾸했습니다.


  어느덧 꽤 퍼진 ‘대리운전’이란 말씨가 있어요. 일본에서 들어온 이름입니다. 우리는 툭하면 일본말을 그냥 끌어들이면서 일본을 꾸짖거나 나무라는데요, 겉속이 다르고 앞뒤가 일그러진 꼴입니다. ‘대리운전’ 한 마디도 우리말로 지을 생각을 못 한다면 일본을 나무랄 주제가 못 돼요. 그러나 저는 부릉이(자동차)를 안 모는 사람이라서 이런 일을 맡길 까닭이 없다 보니 아예 생각조차 안 하며 지냈어요. 어느 책을 읽다가 비로소 ‘대리운전’이란 말씨를 보고는 “아, 더는 안 되겠구나” 하고 여기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가 누구를 불러서 부릉이를 몰아 달라고 한다면, 또 제가 누구 부릉이를 몰아서 옮겨다 준다면, 이러한 일을 어떤 이름으로 가리켜야 서로 어울리고 즐거우면서 이 삶터가 아름다울까 하고 곰곰이 생각했어요. 첫째로 바탕은 ‘모시다’입니다. ‘대리’란 한자말은 ‘맡다·심부름·몫·돕다’가 밑뜻입니다. “과장 대리”란 “과장을 맡다·과장 심부름·과장 몫·과장 도움이”를 가리켜요. 그 자리에 서지는 않되 그 자리에서 해야 하는 일을 하기에 한자말 ‘대리’를 쓰지요. 이런 얼거리를 더 들여다보니 ‘모시는 길·모시는 손’이 생각나고, 단출히 ‘모심길·모심손’ 같은 이름을 지을 만하겠구나 싶어요.


  그나저나 ‘엑기스’는 어떻게 옮길까요? 첫째는 ‘우리다·짜다·뽑다’입니다. 둘째는 수수하게 ‘물’입니다. 셋째는 ‘단물’이지요. 넷째는 ‘알짜·알맹이·고갱이·벼리’요, 다섯째는 ‘알차다·노른자’이고, 여섯재는 ‘몸통·몸·씨알·알·톨’입니다. 일곱째 여덟째 아홉째는 그때그때 우리 나름대로 새롭게 바라보면서 차근차근 가다듬으면 돼요.


ㅅㄴㄹ


*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 짓는 일에 길동무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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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지기(최종규)가 쓴 책을 즐거이 장만해 주셔도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짓는 길을 아름답게 도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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