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하늘을 동무하며 (2021.5.12.)

― 서울 〈한평책빵〉



  처음 ‘서울혁신파크’란 이름을 들을 때부터 무슨 이름을 이렇게 바보스레 짓나 싶었습니다. ‘혁신’에다가 ‘파크’라 하면 새로울까요? 외려 이런 이름이 케케묵지 않을까요? 수수하게 ‘서울쉼터·서울쉼뜰’이라 할 만하고 ‘서울마당·서울뜨락’이라 할 수 있어요. 벼슬꾼 생각이 참 짧습니다.


  이곳에 깃든 〈한평책빵〉에 찾아갔습니다. ‘한 평 + 책 + 빵’인 마을책집이자 찻집입니다. 책을 놓은 자리는 한 뼘보다 조금 크되 나무그늘이 곁에 널찍해요. 서울에 깃든 마을책집 가운데 하늘바라기를 하면서 나무내음을 맡을 만한 곳은 없다시피 합니다. 이처럼 널찍하게 나무 곁에 앉고 하늘바라기를 할 수 있다면 ‘하늘쉼터·하늘쉼뜰·하늘쉼밭’처럼 이름을 고치면 어울리겠구나 싶습니다.


  책집이 닿을 즈음 아슬아슬하게 닿았고, 책집지기님이 기꺼이 틈을 내주었습니다. 서울 둘레가 아닌 두멧시골에서 사는 보람을 모처럼 누립니다. 먼길을 달리며 그 책집은 어떤 숨빛일까 하고 그렸는데, 노을이 지며 어둠이 깔리는 하늘을 서울 녹번동 한복판에서 바라보며 마음을 쉽니다. 바람에 스치는 나뭇잎 소리를 듣고, 불빛에 가리는 별빛이어도 어디에 얼마쯤 있을까 어림합니다. 큰길에서는 부릉부릉 끝없이 달릴 테지만 마을책집이 울타리가 되고 나무가 둘러싸기에 포근하지요.


  책을 놓을 자리는 한 뼘이면 됩니다. 글 한 쪽을 적어서 놓을 자리도 한 뼘이면 너끈합니다. 서로 손을 내밀면서 따스한 숨결을 나눌 자리도 한 뼘이면 됩니다. 우리는 한 뼘을 떨어져서 살아갈 사람이 아닌, 한 뼘을 가깝게 사귀는 사람이어야 저마다 새롭게 빛나면서 하늘빛으로 물들 만하지 싶어요.


  서울시나 은평구에서 이곳 〈한평책빵〉 곁에 비가림터를 마련해 주면서 포도덩굴하고 으름덩굴이 타고 올라서 꽃빛하고 열매빛을 누리도록 이바지하면 좋겠어요. 목돈이 아닌 마음을 기울여 손길을 내밀면 서울도 잿빛 아닌 숲빛으로 차츰 거듭날 만합니다. 뭘 허물고 때려지어야 하지 않습니다. 오래되어야 아름답지는 않습니다만, 오랜손길이 품은 살가운 빛살을 읽어내면서 아이들한테 살림자취를 물려줄 수 있어요. ‘부수고 짓기’는 새롭지(혁신) 않습니다. 가꾸고 돌보기에 새롭습니다. 아이는 풀밭을 뛰놀고 어른은 해바라기하며 쉬고, 푸름이는 꽃송이를 들여다보다가 나무를 타고, 할아버지 할머니는 꽃씨를 심고 나물을 돌보는 ‘하늘쉼뜰’로 나아간다면 저절로 마을빛이 피어날 만하지 싶습니다.


  오늘 새벽에 일어나 ‘하루’란 노래꽃을 썼어요. 이 노래꽃을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라는 책 안쪽에 적어서 책집지기님한테 건넵니다. 노래꽃 한 자락을 품은 책을 장만하고 싶으면 이 책집에 시키시면 됩니다. 우표값을 살몃 얹어서.


ㅅㄴㄹ


《철학자의 음악서재》(최대환, 책밥상, 2020.10.23.)

《요정이 된 마녀 우파바루파》(안나마리아 기티 글·라우라 코르티니 그림/안진원 옮김, 서광사, 1999.12.20.)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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