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베껴쓰다 : 저녁에 갑작스레 전화를 받는다. 지난 2019년에 나온 어느 ‘어린이 동시꾸러미’에 실린 어느 어린이 글이 어느 출판사에서 낸 책에 실린 글(어른이 쓴 동시)을 고스란히 베낀 줄 뒤늦게 알려져 말썽이 되었기에 ‘그 아이가 썼다는 글’을 지워야 한단다. “그렇군요. 그런데 아이는 그렇게 베껴쓸 수도 있는데, 부디 그 아이하고 그 아이를 맡았던 샘물님(교사)하고 새롭게 배우는 길이 되면 좋겠네요.” 하고 이야기했다. 나는 ‘베껴쓰기(필사)’를 안 좋아할 뿐 아니라 아예 안 한다. 베껴쓰기로는 하나도 못 배우니까. 하려면 ‘배워쓰기’를 해야 할 뿐이다. 배우려고 쓸 뿐, 베끼려고 쓰면 스스로 바보가 된다. 아이야, 알렴. 네가 쓸 수 있는 글이 얼마나 아름다운데 고작 다른 사람 글을 베껴서 네 이름을 붙이니? 다른 사람이 쓴 글이 아름답구나 싶으면, 그 아름다운 숨결을 배워서 네 나름대로 새롭게 쓰기를 바라. “맞춤길이나 띄어쓰기는 다 틀려도 좋아. 그저 네 숨결을 노래하면 돼. 우리는 잘나려고 글을 쓰지 않아. 우리는 핑계를 대거나 투덜거리려고 글을 쓰지 않아. 우리는 돈을 벌려고 글을 쓰지 않아. 우리는 이름을 팔려고 글을 쓰지 않아. 우리는 오직 스스로 사랑하면서 이 사랑이 즐겁게 흘러넘쳐서 온누리가 푸르게 우거지는 숲으로 나아가는 길에 한손을 거들려고 글을 써. 우리는 스스로 숲이 되고, 하늘이 되고, 바다가 되고, 바람이 되고, 구름이 되고, 빗물이 되고, 풀꽃나무가 되고, 새가 되고, 별빛이 되고, 눈송이가 되다가, 어느새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오를 꽃씨가 되려고 글을 쓰지.” 이런 이야기를 어느 어린이, 이제는 푸름이가 되었을 그 아이한테 들려주고 싶다. 2021.5.31.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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