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해돌이’와 ‘보물섬’ (2021.2.27.)

― 진주 〈형설서점〉



  얼마 앞서까지 순천서 진주를 오가는 시외버스는 꽤 있었으나 어느새 잔뜩 줄어듭니다. 누리그물로 알아볼 적에는 ‘있다’고 뜨는 버스길이나, 막상 순천 버스나루에 닿고 보니 흰종이를 붙여놓았어요. 아, 알림판에 흰종이만 붙이면 끝인가? ‘순천-청주’하고 ‘순천-춘천’ 버스길은 죄 사라집니다. ‘순천-포항’도 곧 사라질 듯합니다. 기차나루로 건너가서 두 시간 남짓 기다리며 글을 씁니다.


  부릉이(자가용)를 모는 분은 나라 곳곳에서 시외버스가 사라지거나 줄어드는 줄 모를 테지요. 우리 아버지는 어린배움터 으뜸어른(초등학교 교장)으로 꽃마무리(정년퇴직)를 했는데, 그때까지 시내버스·시외버스·전철을 탈 일이 없어서 길삯을 몰랐어요. 적잖은 벼슬꾼(공무원)이며 웃자리 일꾼은 길삯을 거의 모르고 살아가지요. 다들 부릉이 손잡이를 잡을 테니까요. 나라지기(대통령)만 길삯을 모르는 터전이 아니에요. 참 많은 이들이 수수길(대중교통)을 모르거나 등져요.


  진주에는 〈형설서점〉이며 여러 책집을 찾아가려고 옵니다. 저는 책집을 보고서 이웃마실을 갑니다. 책집이 있는 고장은 살기좋다고 여겨요. 책집을 품은 고장은 스스로 새롭게 배우면서 피어나려는 이야기가 흐르는 삶터라고 여겨요. 삶마다 새삼스레 어우러지는 이야기를 지으려는 고장이라면 책집이 태어난다고 여겨요.


  책집이 없는 고장이라면 아이가 적어서 죽어가는 고장이기 앞서 일찌감치 죽어버린 고장이지 싶습니다. 책집을 돌아보는 길잡이(교사)하고 벼슬꾼이 없는 고장이라면 그들(교사·공무원)이 걸어온 길이 고장을 죽인 발걸음이었지 싶습니다.


  헌책집 〈형설서점〉 안쪽에 만화책 《보물섬》이 다섯 자락 있습니다. 아주 깨끗합니다. 어쩜 이렇게 정갈하게 보고서 내놓았을까. “그렇게 깨끗한 《보물섬》은 보기 어렵지. 하나에 15만 원씩인데, 어느 분이 틈틈이 오셔서 두엇씩 사 가셨는데 이제 그만큼 남았네.” 우리는 오늘 새로 나오는 책도 챙겨서 읽고, 어릴 적에 읽고 사랑한 책을 되찾아서 읽기도 합니다. 오늘 다른 책을 한 자락도 안 구경하면 《보물섬》을 하나쯤 장만하려나 싶지만, 살살 쓰다듬고서 내려놓습니다. 언젠가 새로 만나겠지요. 어릴 적에도 《보물섬》은 돈있는 작은집에 놀러갔을 적에 보았습니다. 마을에 만화책 빌려주는 짐차가 올 적에 비로소 느긋이 빌려읽었고요.


  그때에도 못 사던 책을 오늘도 못 사네 하고 새삼스레 돌아보다가 ‘오늘 새롭게 만나서 곁에 두는 책도 많잖니?’ 하고 혼잣말을 합니다. 해돌이를 다룬 반공만화를 보았거든요. 끔찍한 국민교육헌장을 되새기고, 소름돋는 반공독후감에 반공웅변이 떠오릅니다. 앞으로는 이런 바보짓이 이 땅에 발붙이지 않기를 빕니다.


ㅅㄴㄹ


《어두운 마당》(배봉규 글·그림, 한국안보교육협회 엮음, 형문종합교육개발, 1982.4.30.)

《육군문고 4호》(정훈감실, 육군본부, 1959.)

《들어라 역사의 외침을》(정인, 거름, 1985.6.20.)

《이곳에 살기 위하여》(소피 들로네·마린 뷔소니에르/권명희 옮김, 기파랑, 2006.6.12.)

《돼지 치는 법》(편집부, 부민문화사, 1964.5.25.)

《우리말의 뿌리》(서정범, 고려원, 1989.4.20.)

《국민학교 국민교육 헌장 풀이 5·6학년》(문교부, 1970.6.1.)

《소년소녀문장독본 4 글짓기교실》(박목월, 보진재, 1963.6.30.)

《시사》(이춘성 엮음, 내외문제연구소, 1968.12.1.)

《말꽃 타령》(김수업, 지식산업사, 2006.4.7.)

《中等 平面幾何學 上卷》(편집부, 진주프린트사, 1946.10.20.)

《고등학교 국사 하》(국사편찬위원회 1종도서 연구개발위원회, 문교부, 1982.3.1.)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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