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

책숲하루 2021.5.21. 예술작품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국어사전 짓는 서재도서관)

: 우리말 배움터 + 책살림터 + 숲놀이터



  그제 밥을 짓다가 왼손가락을 크게 베었습니다. 칼이 쑥 들어갔어요. 철철 흐르는 피를 물끄러미 보다가 물로 살며시 헹구었고, 띠(밴드)를 대어 추스르고는 마저 밥을 지어서 차렸습니다. 그 뒤로 설거지나 물을 만져야 할 일을 아이들한테 맡기려는데 이모저모 거들다가도 슬그머니 안 해서, 살살 물을 만지면서 부엌일을 하고는 띠를 갑니다.


  어느 해 어느 때부터 마음눈을 꺼리지 않기로 했고, 그때부터 걱정이나 두려움 같은 느낌이 살며시 찾아오다가도 불쑥 사라집니다. 아니 누그러뜨리거나 녹여서 지워요. 이러는 동안 말하고 얽힌 삶이며, 삶하고 얽힌 말을 새삼스레 읽습니다. 아이들이 “아버지 피가 철철 나요!” 하고 놀라지만 “그러니?” 하고 쳐다보았고, “얼른 밴드 붙여요!” 할 적에는 속으로 ‘아, ‘밴드’란 고 영어를 어떻게 풀어내면 좋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이틀을 지나며 돌아보자니 진작에 ‘띠’라는 낱말로 ‘밴드’를 풀어내었더군요. 여느 밴드라면 여느 ‘띠’로 풀어낼 만할 테고, 다친 곳에 붙이는 띠라면 ‘돌봄띠’쯤으로 새말을 지을 만할까요.


  이런 일을 치를 적에 둘레에서 으레 “으째 그런 판에도 새말을 지을 생각을 하시오?” 하고 묻는데, “새말을 지으려는 생각이라기보다, 왜 이러한 일을 치르는지를 조용히 돌아보노라니 어느새 이러한 삶에는 이러한 말로 옛날 옛적부터 사람들이 살아왔구나 하고 머리에 번쩍 하고 스치는 이야기가 흘러들어요. 그러니 그렇게 번쩍 스치는 이야기를 갈무리할 뿐이랍니다.” 하고 대꾸합니다.


  생각해 봐요. 가시어머니(장모님)가 열 몇 해 앞서 저더러 “우리 사위는 다 좋은데 왜 칼을 안 갈아서 써?” 하셔서 그날부터 숫돌로 신나게 칼을 잘 갈아서 썼고, 엊그제는 그렇게 잘 갈아 놓아서 살짝 스치면서도 쑥 베이는 생채기가 났고, 이 생채기를 다스리려 하면서 ‘밴드’란 낱말을 몸으로 되새길 수 있습니다. 다쳐 보고서 뭘 붙이지 않고서야 이때에 쓰는 말씨를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겠지요.


  그러고 보면 ‘가난’하고 얽힌 낱말은 여태 잘 풀어내었는데 ‘가멸다(부자)’하고 얽히거나 ‘돈벌이’하고 얽힌 낱말은 그닥 잘 풀어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돈도 넉넉히 벌어들여서 누려야겠네 하고도 생각합니다. 낱말로 ‘가멸다·푸지다’가 어떤 뜻이나 결인 줄 얼핏 느끼지만, 막상 삶으로 ‘가멸다·푸지다’를 편 일은 드물거든요. 큰고장에서는 삯집에서만 살았기에 ‘집임자’나 ‘임자’나 ‘지기’란 이름하고 얽힌 살림을 몰랐지만, 시골로 터전을 옮기면서 빈집을 1000만 원에 장만하여 ‘집임자’가 되고부터는 이럭저럭 ‘집임자·임자·지기’란 무엇인가를 조금씩 깨닫습니다. 앞으로는 ‘땅임자’도 되어 보면서 이러한 말씨하고 얽힌 살림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해요.


  다만, 어릴 적인 1970∼80년대에 1990년대까지, 총칼나라로 짓밟힌 수렁판에서 끔찍하고 모진 ‘싸움밭’을 겪었기에 ‘싸움·다툼·겨룸’을 더 겪을 마음은 터럭만큼도 없습니다. 요즈음 싸움터(군부대)에서 싸울아비(군인)한테 주는 밥이 구지레하다는 소리가 곧잘 불거지는데요, 제가 싸움터에서 볼볼 기는 하루를 보내야 하던 1995∼1997년에는 아주 말할 수 없는 ‘걸레밥’을 먹었습니다. 이 걸레밥조차 없어서 굶기도 했고, 대대·연대·사단…… 쭉쭉 올라가는 그들이 얼마나 먹을거리(식량)를 빼돌리면서 중대·소대에 있는 사람(군인)을 가난과 굶주림에 허덕이도록 했는가를 뼛속 깊이 느끼고 보았습니다. 1997년 한여름에 한때 달걀을 신나게 먹은 적이 있는데요, 윗물(상급 부대)에서 고기(돼지고기·소고기)를 몽땅 빼돌리고 달걀이 신물난다면서 밑물(하급 부대)에 달걀만 잔뜩 보낸 적이 있어요. 뭐, 하루에 달걀을 예닐곱 알씩 먹었지요. 배추하고 무는 안 주고 동글배추(양배추)만 잔뜩 주었기에, 동글배추를 지겹도록 먹은 적이 있고요. 고맙게. 그때 중대장·행정보급관뿐 아니라 모든 군간부가 쌀하고 건빵이며 ‘맛스타’란 이름인 마실거리까지 대놓고 빼돌려서 쌀밥조차 모자라기 일쑤였는걸요.


  아무튼 오늘은 드디어 ‘예술·작품·예술작품’이란 말씨를 찬찬히 손질하는 실마리를 거의 풀었습니다. 이제는 이 세 마디를 굳이 안 쓸 수 있습니다.


ㅅㄴㄹ


*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 짓는 일에 길동무 하기

http://blog.naver.com/hbooklove/220188525158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지기(최종규)가 쓴 책을 즐거이 장만해 주셔도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짓는 길을 아름답게 도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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