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닿는 길 (2019.6.8.)
― 인천 〈한미서점〉
똑같이 찾아드는 하루란 없고, 똑같이 하는 일이란 없습니다. 바람이 똑같이 분 적이 없고, 햇볕이 똑같이 쬔 날이 없습니다. 늘 다르게 흐르면서, 언제나 새롭게 맞이하는 삶입니다. 어제 읽은 책을 오늘 쥐기에 어제처럼 느껴야 하지 않습니다. 오늘 읽는 책을 이튿날 쥔대서 오늘처럼 느끼지 않습니다. 늘 다르게 맞이합니다. 하루만큼 새로 배우고, 쪽틈만큼 새록새록 담아요.
어느 날 어느 분 손길이 닿아서 읽힌 책이 어느 보금자리에 깃들다가 어느 날 새롭게 길을 떠납니다. 처음 알아본 사람이 오래오래 곁에 두는 책이 있고, 처음 알아본 사람이 스스럼없이 내놓는 책이 있습니다. 책은 한 사람 곁에서 두고두고 흐르기도 하고, 여러 사람 눈을 거치며 나들이를 다니기도 합니다. 때로는 조용히 숨을 내려놓고서 흙으로 돌아갑니다.
인천 가좌동에서 책숨을 나눈 자취가 “신간·각종서적·기술서적, 경기서점, 가좌동 주공APT 앞 571-5058”이라 적힌 책집 붙임띠(테이프) 넷으로 남습니다. 1990년에 태어난 책은 그즈음 어느 마을책집에서 비닐싸개에 책집 딱종이를 온몸에 안고서 길을 나섰어요. 이러다가 새 손길을 기다리며 헌책집으로 옵니다.
문득 돌아보면 마을책집뿐 아니라 마을가게는 가게이름이랑 전화번호를 깨알글씨로 담은 조그만 딱종이를 썼습니다. 여느 붙임띠를 쓰는 곳도 있지만, 가게이름이랑 전화번호를 새긴 붙임띠도 꽤 썼어요. 가게 붙임띠를 고이 건사하는 곳이 있을까요? 틀림없이 살림자취(생활사) 가운데 하나일 텐데, 이 대목을 눈여겨볼까요? 책을 다루는 살림숲(박물관) 가운데 ‘책집 싸개’나 ‘책집 붙임띠’나 ‘책집 이름쪽’이나 ‘책집 알림판’을 건사하는 곳은 아직 없다고 느낍니다. 아니 ‘책집 발자취’를 건사하는 살림숲은 아예 없지 싶어요.
인천 배다리 〈한미서점〉에서 여러 가지 책을 돌아보고 읽다가 몇 자락 고릅니다. 발길이 닿아 눈길이 가고, 손길을 뻗어 숨길을 읽고, 마음길을 헤아려 생각길을 엽니다. 마을이웃이 마을책집을 찾고, 먼먼 고장에서 사는 이웃이 먼걸음으로 이곳에 이릅니다. 연속극·영화를 보았기에 책집골목을 찾아오는 발걸음도 있는데, 어떤 뜻으로 마실하더라도 ‘책이 있는 집’을 만나요. 누구한테나 열린 책이듯 누구나 바라보면서 읽고 아끼는 이야기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책집에 와서 책만 읽다가 갈 수 있고, 골마루를 조용히 거닐다가 갈 수 있습니다. 바쁜 나머지 허둥지둥 책만 사고서 떠날 수 있고, 느긋이 수다를 떨다가 갈 수 있어요. 다 다른 발길에 다 다른 삶길입니다.
ㅅㄴㄹ
《톡톡 알에서 나와요》(르네/조병준 옮김, 웅진닷컴, 2001)
《스스로 고통을 간직한 사랑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오리아나 팔라치/안젤라 옮김, 참빛, 1990)
《꽁지머리 소동》(로버트 먼치 글·마이클 마르첸코 그림/박무영 옮김, 풀빛,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