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우이산 곁 새롭게 숲 (2020.12.23.)

― 서울 〈신고서점〉



  저는 서울 이문동 한국외국어대학교를 다섯 배움철(학기)만 다니고서 그만두었습니다만, 이문동에 있는 한겨레신문 나름터에서 새뜸(신문)을 돌리며 일했기에 새즈믄해(2000년)를 맞이할 무렵까지 이 둘레에서 살았습니다. 새뜸을 돌리려고 자전거에 가득 싣고 다닐 적마다 〈신고서점〉 앞을 스치는데, 틈나는 대로 들러서 혼자 책으로 배우고, 살림돈을 아껴 몇 자락씩 장만했어요. 책을 사서 읽느냐 저녁거리를 장만하느냐는 갈림길에서 늘 책을 골랐고 하루 한끼로 버텼습니다.


  새벽에 새뜸을 다 돌리면 막내인 제가 밥을 짓는데, 이 밥으로 하루를 살았어요.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자꾸 울리면 물을 마시거나 침을 삼켰어요. 먹을거리가 없으니 책을 펴면서 “나는 책을 읽어. 오직 책만 생각해.” 하면서 밤을 지새웠습니다. 길에서 새뜸을 한 자락 팔면 300원을 얻는데, 마을가게에 50원 외상을 걸어 350원짜리 라면 하나 사서 토막내고는 국물만 가득하게 끓여 이틀로 나누어 먹었어요.


  늘 굶으며 혼자 배우던 가난배움이한테 〈신고서점〉은 마음을 살찌우는 쉼터였습니다. 〈외대학보〉에 우리말·책·헌책집 이야기를 이레마다 실었는데, 학보사에서는 제가 학보 글삯으로 책을 사읽는 줄 뻔히 알고는 “글 안 주셔요?” 하고 나름터에 전화로 묻기도 했습니다. 토막글은 3만 원, 긴글은 5만 원, 두 꼭지 실으면 8만 원, 눈물겨운 글삯을 받는 날은 어김없이 〈신고서점〉이며 서울 곳곳 헌책집으로 자전거를 달려서 책값으로 탈탈 털었습니다. 이런 저를 보다 못한 어느 헌책집지기는 “허허, 젊은이는 책만 먹나? 밥도 먹어야지?” 하면서 책값으로 주머니를 다 털어낸 저한테 “나 혼자 먹으면 심심하니 같이 짜장면 먹을까?” 하면서 옷소매를 잡아끌었습니다.


  길장사로 책을 처음 팔던 〈신고서점〉은 ‘외대 앞’이라는 자리를 얼추 마흔 해 살아냈습니다. 조금씩 가게를 넓혔고 웃칸(2층)까지 올렸어요. 그런데 이문동에 잿빛집(아파트)을 높이 올리려는 장사판이 그치지 않았어요. 마을헐기(재개발)를 놓고 열 해를 겨루다가 손들기로 하고서 이문동을 내려놓고 성신여대 앞으로 옮기기로 합니다. 거의 한 해에 걸쳐 책짐을 옮깁니다. 새터는 모두 넉칸(4층)을 통째로 책집으로 꾸밉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고 큰 헌책집이 됩니다.


  손길이며 자취를 아로새긴 마을을 떠나기는 쉬울까요? ‘오랜책집’을 눈여겨보는 이웃은 누구일까요? 우이산 곁에 새롭게 숲이 들어섰습니다. 나무한테서 온 책으로 가꾸는 책숲입니다. 나무가 푸르다면 책은 새롭습니다. 옛터가 아스라하다면 새터는 초롱초롱 노래합니다.


ㅅㄴㄹ


《das groβe Buch der Baume》(Hugh Johnson, Hallwag Verlag, 1974)

《die Illustrierte Enzyklopadie der Aroma Ole》(Julia Lawless, Scherz, 1996)

《국어 오용 사례집》(편집부 엮음, 국어연구소, 1989.12.26.)

《사바행》(이청, 형성사, 1980.8.10.)

《나는 죽어서도 새가 되지 못한다》(서효원, 서울창작, 1993.2.10.)

《解脫門》(마스나미 고오도/심동흥 옮김, 불교출판사, 1981.6.30.)

《a dangerous freedom》(Bradford Smith, Dell pub, 1954)

《Herinneringen uit mijn leven》(J.H.Gunning J.Hz, Spruyt, 1940)

《문장연습》(고려대 교양학부 교양국어연구실, 고려대학교 출판부, 1973.3.1.)

《그림 이야기·한국편 3 쥐의 사위 고르기》(장수철 글·백민 그림, 동아출판사, 1986.9.15.)

《百萬人의 文學聖書 1 天地創造》(한국 크리스찬 문학가협회, 금성출판사, 1971.12.15.)

《もののけ姬》(宮崎 駿, 德間書店, 1993.12.31.)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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