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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에몽 0
후지코 F. 후지오 지음, 장지연 옮김 / 대원씨아이(만화) / 2020년 10월
평점 :
절판
숲노래 푸른책/숲노래 만화책 2021.3.9.
- 앞으로 살아갈 길을 그리다
《도라에몽 0》
후지코 F.후지오
장지연 옮김
대원씨아이
2020.10.31.
무척 오래 나온 노래꽃책 《도라에몽》인데 《도라에몽 0》(후지코 F.후지오/장지연 옮김, 대원씨아이, 2020)이 새삼스레 나왔습니다. 《도라에몽 0》은 일본에서 여러 달책에 다 다른 판으로 나온 첫걸음을 한자리에 모았다는군요. 나이에 따라 다 다른 어린이가 보는 달책에 조금씩 줄거리를 바꾸면서 들려준 첫걸음인데, 다 다르면서도 비슷한 결이 있어요.
잘 해내는 사람이 있다면, 잘 해내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잘못 해내는 사람이 있다면, 잘못 해내지 않는 사람이 있어요. 잘 해내기에 대단하지 않고, 잘못 해내기에 엉성하지 않습니다. 그저 그렇게 해내는 길에 저마다 다른 삶을 맞아들이면서 배웁니다.
으레 넘어지는 사람이 있다면, 좀처럼 안 넘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꾸 넘어지는 사람이 있다면, 아예 안 넘어지는 사람이 있어요. 툭하면 넘어지기에 바보스럽지 않고, 넘어지는 일이 없기에 훌륭하지 않습니다. 그저 넘어지는 길에 새로 배우고, 다시 일어서면서 한결 의젓하기 마련입니다.
아기는 넘어지면서 큽니다. 아이는 다치면서 자랍니다. 어린이는 앓으면서 튼튼합니다. 푸름이는 갈팡질팡하면서 생각을 키웁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굽이길도 에움길도 가시밭길도 없이 살아간다면, 어떤 하루나 보람일까요?
미리놓기(예방접종)를 해서 안 아픈 일이 좋을까요? 아예 나쁘지는 않겠습니다만, 구태여 미리놓기를 하기보다는 즐겁게 놀고 일하고 배우고 살림하고 사랑하면 넉넉하리라 생각해요.
참으로 곰곰이 돌아볼 노릇입니다. 마음앓이 없이 사랑으로 갈 수 있는지요? 가슴앓이 없이 사랑꽃이 피어나는지요? 앓는 일은 안 나쁩니다. 앓아서 나쁠 일이 없습니다. 앓으면서 새로 깨어나는 길을 스스로 찾아나섭니다.
‘진구(노비타)’라는 아이는 걸핏하면 넘어지고 울고 떼쓰고 미루면서 스스로 삶길을 엉성하게 한다지요. 무엇보다도 앞꿈이 없이 눈앞일이 허덕인다지요. 이런 아이를 보다 못한 먼먼 앞날에서 책상서랍으로 찾아와서 ‘네(할아버지)가 그러니까 우리(뒷사람)가 애먹잖아? 앞날을 바꿔 보지 않겠어?’ 하고 말을 걸고 ‘도라에몽’이라는 로봇을 빌려주는 이야기입니다.
게으름을 부리고 떼를 쓰고 스스로 하나도 안 애쓰고 언제나 미루기만 하는, 이 아이는 앞길이 어떻게 될까요? 스스로 해내려는 생각은 안 하고, 넘어지면 아프거나 다칠까 걱정만 하는 이 아이 앞날은 어떤 모습일까요?
노래꽃책에 나오는 아이는 바로 우리 모습이기도 하고, 우리가 숨기는 모습이기도 하며, 우리가 잊은 지난날 모습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이 아이처럼 엉성하거나 바보스러운 짓은 하루도 한 적이 없는 분이 있을는지 모르겠어요. 아마 그런 분이 있다면 《도라에몽》은 매우 심심할 수 있습니다.
앞길은 얼마든지 바꿉니다. 오늘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앞길은 다릅니다. 오늘 여기에 있는 모습만 바라보면서 꿈을 그리지 않으면 앞날은 오늘하고 똑같을 만하고, 때로는 오늘보다 더 굴러떨어질 만해요.
꿈을 바라보고 걷는 사람은 꿈으로 가요. 꿈으로 가는 동안 가시밭이나 고비나 벼랑을 지나야 할는지 몰라도, 오롯이 꿈을 바라보기에 안 흔들리고 안 망설이며 안 헤맵니다.
꿈을 안 바라본다면 투정이며 핑계에 시샘이 가득해서 자꾸 이웃이나 동무를 미워하거나 싫어합니다. 꿈을 안 바라보기에 골을 내요. 꿈을 안 바라보기에 막말을 쏟아붓고 막짓을 일삼아요. 스스로 심어서 가꿀 꿈인데, 남이 해주지 않는다고 앙탈을 부리거나 악을 써대기도 해요.
앞으로 살아갈 날은 스스로 그립니다. 어제까지 살아낸 날은 스스로 돌아봅니다. 아침을 열며 맞이할 하루는 스스로 걸어갑니다. 누가 그려 주지 않고, 누가 돌아봐 주지 않고, 누가 걸어가 주지 않아요.
배가 고프면 스스로 밥을 차려서 스스로 수저를 들고 스스로 떠먹어야 합니다. 쉬가 마려우면 스스로 뒷간으로 가서 쉬를 누어야 합니다.
누가 쉬어 주는 숨이 아니지요. 누가 자 주면 될 밤이 아니지요. 언제나 우리가 스스로 합니다. 모두 우리가 손수 합니다. 잘도 잘못도 없이 하나하나 맞닥뜨리고 맞아들이면서 새롭게 빛나는 하루를 짓습니다.
ㅅㄴㄹ
“미래가 뭐야?” “미래는 과거의 반대말이야. 우리는 거기에서 왔어.” “엄마∼. 이상한 애가 있어.” “아무도 없는데? 그 애는 어디서 왔는데?” “책상 서랍에서.” “얘도 참, 농담은.” (18쪽)
“무슨 일이니, 진구야. 신음 소리를 내고.” “엄마도 참. 노래 연습을 하고 있었는데. 오늘 밤 다같이 장기자랑을 할 거거든.” “역시 진구 노래가 최고라니까.” “신음 소리라고 했으면서. 노래는 그만둘래.” (24쪽)
“뭐, 뭐, 뭘 해도 안 된다니, 너, 너, 너무 맞는 말만 하지 말라고.” (42쪽)
“가만히 있으면 이렇게 된다는 얘기야. 미래를 바꿀 수도 있어.” “저, 정말이야?” (47쪽)
“우리가 사는 22세기가 되면 과학이 엄청나게 발전해서 여러 가지 편리한 것들이 발명되지만, 바보에게 듣는 약만은 아직 만들지 못했어. 이건 정말 유감이야.” (69쪽)
“네 20년 후 모습이야.” “시, 싫어. 이런 거 싫어.” “우리도 괴로워. 그러니까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해야지.” (73쪽)
“바보네. 모처럼 잘돼가고 있었는데.” “이제 싫어! 바보 취급을 당할 정도라면 죽는 게 나아!” “나는 너를 위해서…….” “그냥 놔둬. 내 운명은 내 손으로 개척할 거야.” “의외로 고집이 세네.” (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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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